최근 몇 주간 인터넷 공간은 몰래카메라(몰카)와 지인 혹은 연예인 합성사진, 데이트 폭력 등 여성의 안전과 인권에 대한 문제로 들썩였다. 지난 3월 걸그룹 아이돌 스타의 팬 사인회에서 남성 팬이 안경을 이용해 몰카를 찍으려다 적발되어 논란이 된 이후에 다시 한번 뜨거운 이슈가 된 것이다. 특히 화장실 몰카가 화제가 되면서 여성들에게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는데, 공중 화장실의 벽과 문에 있는 작은 구멍을 찍은 사진들이 공유되면서 공포의 확산에 한몫을 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이렇게 작은 구멍에 몰카를 설치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이런 범죄가 굉장히 드물 뿐 아니라 소수의 범죄자에 의해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심지어 일부는 혹시 몰카에 찍히더라도 신체 일부만 찍히는 것이고 신상을 알 수 없으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왜 이 문제가 여성의 안전과 인권에 대한 것인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알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언술들일 뿐이다.
현대 사회는, 남성의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다수의 경우는, 여성의 신체가 대상화되고 유통되는 사회이다. 미국의 철학자 누스바움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대상화 개념의 핵심은 사람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대하는 것, 어떤 개인의 신체를 온전함이 없는 것으로, 신체의 경계를 침범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신체의 일부만 전시하는 것은 이처럼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에 따른 객체로 삼는 것을 반복해 온 성차별적 문화 속에서 가능한 일이다. 남성 이용자가 많다고 알려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종종 여성의 신체 일부를 부각하는 사진을 짤방으로 사용하는 것, 뉴스 웹사이트에서 종종 보이는 낚시성 광고들이 문제가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지인이나 연예인의 사진을 합성하는 것 역시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도구화하면서도 이 과정과 결과물을 유희로 소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그 개인의 신상이 드러나는 또 다른 문제가 여기에 더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여성의 대상화 문제는 주로 ‘음란성’과 ‘선정성’이라는 틀로 다루어져 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자들이 파편화된 여성 신체 사진을 올리면서 ‘19금’이라는 말머리를 붙이고, 뉴스 웹사이트의 광고에 대해 선정성 차원에서 저급성을 문제 삼는 식이다. 이러한 인식틀은 몰카, 친밀한 관계에서 촬영한 성 관련 영상물, 지인합성사진의 소비 방식 및 대응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런 영상물과 이미지들은 웹하드 서비스나 파일 공유 서비스에서 음란물 즉 야동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며, 규제 역시 음란물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다.
2015년 이후 한국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디지털성범죄아웃운동’의 활동가들은 이 ‘야동’으로서의 유통 구조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 제14조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이라는 표현이, 이러한 디지털 이미지 생산 과정에서 가해자의 행위보다 촬영된 이미지 자체를 성적 욕망이나 음란, 선정의 틀에서 해석하도록 만들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해외에서도 이를 포르노그래피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가 진행된 바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는 것을 리벤지(복수) 포르노라고 명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파일로 유통되는 영상물들은 그 확산 범위나 속도를 제어하기가 힘들다. 영상물을 유포하는 자들은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위협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영상물 유포 행위 자체가 폭력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유포 행위는 명백히 여성에게 고통과 수치심을 주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또한 이를 음란물로 유통하고 소비하는 행위 역시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인식 구조는 의사에 반하는 촬영 행위만을 문제 삼고 있으며 디지털 이미지 세계에서의 문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몰카와 같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들리는 용어가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 성착취 혹은 성폭력으로 개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이미지와 영상물의 촬영, 유통, 소비 구조는 총체적으로 여성의 성적 대상화 관습에 기반을 두고 여성을 동등한 인격을 갖춘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성차별적 인식 구조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한 여성의 고통이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 즉 포르노가 되는 것, 그것이 문제이다. 촬영만을 범죄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유통과 공유 역시 문제가 되는 행위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을 이런 방식으로 대상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 모두가 공유하는 상식이 되어야 한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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