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창사 5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을 제작한 김재영 PD(40)는 “주변에서 남극이 얼마나 추웠냐고 물어보는데 막상 돌아와보니 방송 현실은 남극보다 더 춥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PD는 “남극에도 봄이 오듯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MBC 노조의 총파업 이후 회사의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김 PD는 28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남극의 눈물> 마지막회 에필로그가 남아 있는데 방송이 나가지 못하고 있어 시청자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총파업이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 마지막 6부의 편집 작업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올해 입사 12년차인 김 PD는 영하 60도의 혹한과 시속 200㎞를 웃도는 눈보라 속에서 1년 가까이 머물며 황제펭귄과 혹등고래 등 남극 동물의 생태를 화면에 담았다.
<남극의 눈물>은 올해 초 1~5부가 방송됐다. AGB 닐슨 시청률 조사결과 12~14%를 기록했다. 다큐멘터리로서는 상당히 높은 시청률이다.
그러나 <남극의 눈물>은 파업과 함께 5회를 끝으로 더 이상 방송되지 않고 있다. 현재 프로그램 홈페이지에는 “에필로그편은 방송시간이 미정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남극의 눈물>이 방송될 시간에는 이미 전파를 탄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이 재방송되고 있다.
김 PD는 이날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청계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었다. 그는 촛불을 들고 파업에 나선 이유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김재철 사장 체제 이후 MBC 뉴스는 물론이고 다른 프로그램도 모두 죽었습니다. 공영방송은 후퇴했고 상업화됐습니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파워업 PD수첩>에서 밝힌 것처럼 한상대 검찰총장에 대한 취재는 기획 단계부터 윗선에서 가로막혔습니다. 검찰의 수장이 부동산 전입 등 수많은 의혹 속에 취임하는데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내곡동 사저 문제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는 취재할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또 “남북경협 중단 문제를 취재하겠다고 했더니 ‘정체성과 안 맞는다’며 담당 PD를 전혀 다른 부서로 발령냈다”고 했다. 김 PD는 “방송강령에 따르면 남북관계 개선에 노력하라고 돼 있다”며 “방송강령이 무용지물이 돼버린 것이 MBC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업 첫날부터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시위에 동참했다. 김 PD는 “공영방송이라면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파업 참가 이유를 밝혔다.
“8개월간 고생해 남극을 촬영하고 돌아오니 ‘PD수첩’에 대한 본격적인 숙청작업도 시작됐습니다. 비판적인 아이템은 회의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생존의 현장인 남극에서 알을 낳는 펭귄보다 못한 현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방송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김 PD는 “참아왔던, 말하지 못했던 고통이 컸지만 서로 보듬고 힘을 내고 있다”면서 “비록 지상파 방송을 통해 시청자를 만나지 못해도 <파워업 PD수첩> <제대로 뉴스데스크>를 통해 국민을 만나고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마이크를 내려놓은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도 “해야 할 일을 놔두고 거리로 나선 것은 절박함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에 나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김 PD는 MBC가 파업을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늦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지만 그래도 나섰고 무임승차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아주 상식적인 방송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진심을 믿어달라”며 “언론이 제 기능을 하는, 그런 일터로 돌아가 시청자들과 하루빨리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극의 눈물>은 25억원을 들여 2년 동안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1부 <얼음대륙의 황제>에서는 영하 60도 혹한의 추위 속에 사는 황제펭귄의 1년을 담았다. 2부 <바다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여름마다 태평양에서 남극까지 찾아오는 혹등고래의 생애를 조명했다. 3부 <펭귄 행성과 침입자들>에서는 조류콜레라 발발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쥐의 번창, 펭귄 개체수 급감 등 지구 온난화로 남극이 직면한 어려움을 들여다봤다.
4부 <인간과 최후의 얼음대륙>에선 세계 7개 나라에서 세운 12개의 남극기지를 방문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엿봤다. 아직 방송되지 않은 마지막회에서는 제작 과정과 못다 한 뒷얘기를 담을 예정이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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