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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김재철사장 오산했다, 방송작가 다 들고 일어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이들은 “우리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들은 담담했다. 하지만 씁쓸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하소연하고 싶어도 할 데가 없었다고 했다. 이미 ‘잔혹사’는 1년 5개월 전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일방적인 해고. PD수첩 메인 작가들 이야기다.

 

 

이들이 자신들의 해고 사실을 안 것은 지난 7월 하순이었다. 한 후배 작가로부터 “PD수첩에서 작가를 뽑는다고 한다”는 문의를 받으면서다.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났다.

 


7월 25일, PD수첩 메인 작가들은 자신들이 정말 해고되었는지 여부를 물어보기 위해 MBC 시사제작국장 면담을 신청했다. 그들을 만난 배연규 PD수첩 팀장은 “특별히 할 말 없다. 작가 교체는 국장의 지시”라고만 했다. 국장은 회의 중이라고 했다.

 

 

 

 

 

기다렸다. 마침내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이 나왔다. 장형운 작가(36)의 말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국장은 ‘전원 교체하기로 했고, 그것은 내 결심이고 권한이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되물었다. 대체 이유가 뭐냐고. 작가를 단체로 전원 해고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항의했다. 그런 모호한 말이 어디 있느냐. 그렇게 항의해도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원래대로 하면 올림픽이 끝난 8월 21일이 파업 후 첫 방송 예정일이다. 파업 전 진행했던 아이템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다 자르겠다고 했다.

 

 

프로그램 제작에서 작가들의 역할은 PD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이템 선정 단계에서부터 PD들은 작가들과 상의하면서 취재를 진행한다. PD가 촬영과 인터뷰를 하면 작가가 편집구성안을 만든다. PD가 편집을 하면 최종 ‘타임커트’는 작가와 같이 진행한다. 그 작업이 끝나면 작가는 다시 영상대본을 쓴다.

 

 

7월 31일 국장 및 팀장 면담에서 PD수첩의 현업 PD들도 작가 해고에 대해 항의했다. 돌아온 답은 “그거(대본) PD들이 직접 쓰면 안 되나”라는 것이었다. 현업 PD들도 작가 해고는 사실상 PD수첩의 손발을 자르겠다는 회사의 통보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MBC노조 파업으로 징계된 한 PD는 전후사정을 이렇게 전했다. “사측은 우리가 복귀하리라는 것을 예상 못했던 것 같다. 8월 21일 방송을 앞두고 시용PD들을 계약해서 우리 없이 PD수첩을 만들려고 했는데 돌아오니 안 되겠다 싶어 우선 자르기가 쉽다고 생각한 작가들부터 잘라낸 것 같다.”

 

 

이어 그는 “노조 복귀 전부터 사내에서 돌던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김재철 사장 측이 가장 눈엣가시처럼 여겨 손볼 대상 1순위로 생각했던 것이 PD수첩이었다는 것이다. 즉, 이번 작가 해고는 국장이나 팀장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김재철 사장의 의중이 실린 조치라는 주장이다.
 


그는 덧붙였다. “김재철 사장이 오산한 것이다. 해고가 쉽다고 생각해 우선 작가들부터 자른 것은 큰 실수다. PD수첩 작가들뿐 아니라 예능, 오락, 드라마 작가들까지 하나가 돼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 사안에 대해 MBC뿐만 아니라 KBS, SBS, EBS 등 공중파 4사, 케이블 작가들까지 다 들고 나섰다. 결국 사면초가에 몰린 김재철 사장의 자충수가 될 것이다.”

 

 

실제 한국방송작가협회(이사장 이금림)는 7월 31일 긴급 확대 집행부 회의를 열고 김재철 사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기존 작가를 배제한 PD수첩에 가지 않겠다”고 밝힌 협회 회원 서명자 수가 850명이 넘었다. 1200여명 전체 회원의 3분의 2가 넘는 숫자다. 면담 결과에 따라 작가들의 ‘단체행동’도 예고되어 있는 상태다.

 

 

·제주 7대 자연경관, 특종 못한 까닭

 

 

인터뷰를 한 8월 1일까지도 PD수첩 작가들은 “회사로부터 정식 해고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7월 25일 국장 면담 이후 자신들의 출입증이 정지되어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장 작가의 말.

 

 

“7월 30일 MBC 앞에서 방송 4사 구성작가협의회의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그날 아침 비가 많이 왔어요. 현수막을 달기 시작하니 청경이 문을 닫고 출입하는 사람들을 한 사람씩 확인하기 시작하더군요. 집회가 끝나고 피케팅을 하려고 정문에 갔는데, 비가 한 10여분 동안 엄청나게 쏟아지는 거예요.

 

 

잠시 비를 피하려고 MBC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청경이 막고서 이름을 물어봐요. 이름을 말하니 ‘장형운, 이소영, 이화정 등 6명은 MBC에 출입 못합니다’라고 답해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출입을 중지시키라는 시사제작국장의 지시가 내려왔다는 겁니다.”
 


이소영 작가(34)가 말을 받았다. “국장 면담한 이튿날, 출입증이 정지되었으면 방문증을 끊어서라도 들어가려고 방문처를 ‘PD수첩’이라고 쓰고 PD수첩 팀에 전화를 했습니다. 팀장은 ‘자신과 약속한 적이 없다’고 한 거예요. 완전히 출입금지된 것을 확인한 거죠.”

 

 

‘PD수첩 잔혹사’가 시작된 것은 이미 1년 반이 넘었다. 과거 기자는 ‘BBK 가짜편지 사건’을 취재하던 중, 논란의 당사자 신명씨로부터 PD수첩과 관련한 심상찮은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3월인가 4월 무렵에 PD수첩 팀이 와서 세 차례에 걸쳐 취재해 갔어요. 그런데 왜 방영이 안 되었는지.”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문이 풀렸다. 담당했던 PD가 전보조치 당했다. 작가들은 윤길용 국장이 시사교양국장으로 부임해온 지난해 3월부터 계속 벌어지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BBK 가짜편지 사건뿐만 아니다. 세계 7대 자연경관 문제는 처음 냈을 때 진행했더라면 PD수첩의 특종이었는데.” 이소영 작가(34)의 말이다.

 

 

PD수첩의 꼭지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성된다. 작가들은 이를 ‘생생’과 ‘심층’으로 나눠 구분한다. ‘생생’은 그 주의 현안에 대한 비교적 가벼운 취재다. 심층은 30~40분 분량으로 들어간다. 이소영 작가의 기억으로는 ‘세계 7대 자연경관’ 문제는 ‘생생’ 때부터 아이템을 냈다.

 

 

“계속 아이템이 잘리는데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좋은 일을 한다는데, 왜 남의 잔칫상에 재를 뿌리려느냐’, ‘제주도민이 다 (항의하러) 올라오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식인데….”

 

 

이번엔 장 작가가 말을 받았다. “뉴세븐 원더스라는 단체가, 조사해보니 실체가 없는 단체였다. 그때 담당PD가 해외취재도 알아보고, 이게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된다 싶어서 취재라인에 올렸는데, 팀장이 무조건 ‘킬(kill)’시키니까 이상하기는 한 거예요. 그렇게 전화투표해서 제주도가 선정되면 제주도에 좋은 것이 아니냐는 식이었고.” 작가와 PD들은 돌아가면서 제주 7대 경관 문제를 아이템으로 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다. 파업 기간 중, 노조는 PD수첩 제작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피떡수첩’ 영상을 제작했다. 이 영상의 중반 부분에 이 부분에 대한 증언이 들어 있다.

 

 

이중각 PD는 당시 ‘팩트체커 PD’에게 기획안을 들고 갔다. 하지만 팩트체커 PD는 ‘시청률이 안 나온다, 이야기가 안 된다’ 등의 말을 하면서 이 PD 앞에서 기획안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장 작가는 덧붙였다. “그 영상에 나온 사람들은 전부 전보조치를 당하거나 제재를 당했습니다.”

 

 

작가들은 아이템들이 ‘리젝트(reject)’를 당하는 데에는 ‘뻔히 예측되는 공식’이 있었다고 말한다. 삼성 노동자 백혈병 사망 아이템의 경우 판결나기 전에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승인을 낼 수 없는 것이고, 판결이 난 후에는 ‘판결이 났는데 왜 또 다루냐’는 식이었다. 계속된 장 작가의 말.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의혹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심 선고 나기 직전에 아이템을 냈는데, ‘만약 유죄가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결과를 기다려보자’며 보류 지시를 했어요.”

 

 

·사측 “해고 아니라 교체다” 주장

 

 

작가들에 따르면 과거 국장이나 팀장의 역할은 그러지 않았다. 이소영 작가는 “주변에서 외압이 들어오면 팀장이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데 팀장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었다. 아이템 이야기만 하면 국장실로 간다. 나와서 하는 말이 ‘그것은 조금 안될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재고해달라’는 식이다. 우리는 그것을 팀장의 말로 믿지 않았다.”

 

 

이 시기, PD수첩 간부와 일선 PD들 사이의 불신과 갈등의 골은 깊어갔다. 다음은 이화정 작가(34)의 말. “작가들이 신분상 약한 고리이긴 하다. 그런 조건을 이용해 작가들로부터 정보를 캐내려고 했다. PD들이 간부들과 늘 싸우니 작가들에게 와서 뭐 준비하고 있는지,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는지 체크했다. 메인 작가들에게 물어봤다가 안되면 막내들 취재작가들에게 ‘현재 진행 상황을 페이퍼로 정리해줄래’ 하는 식이었다.”

 

 

아이템이 ‘킬’되는 과정에서 이들이 간부들로부터 들은 ‘어록’은 화려(?)하다. “한진중공업 사태 때 생생을 넘어 심층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서 제지당했다. ‘김진숙씨는 원래 그런 일을 하던 사람이다. 그게 직업인 사람인데…(뭘 크게 다루려고 하느냐).’”

 

 

지난 월요일 열린 방송 4사 구성협의회 기자회견에서 정재홍 작가가 폭로한 ‘윗분’의 말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4대강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18명 죽었다. 그래서 그것을 기획하려고 하는데, ‘18명이 뭐가 많이 죽었다고 방송하냐?’, ‘노동자들이 한눈 팔다 죽었겠지’. 결국 세 차례나 아이템은 보류되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강르네상스를 다룬 아이템을 진행하는데, 오세훈 시장이 여의도 아파트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내용을 방영 당일 삭제하라고 했다. 편집과 대본이 다 마련된 상태에서 요구를 한 것이다. 지난해 연말 특집에서는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터뜨리는 장면을 사전시사한 간부진이 FTA 부분은 다 빼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실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PD수첩 잔혹사’를 현실에서 연출한 윤길용 전 국장은 PD수첩 PD 출신이다. 벌써 20년이 넘은 전통을 망가뜨리는 일을 이들은 정말 원하는 것일까.

 

 

이들의 휴대전화 번호로 앞에 거론된 주장들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를 했다. 하지만 8월 3일 오전까지 위에서 거론한 MBC 간부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김현종 국장은 8월 2일자 ‘MBC 특보’를 통해서 “작가는 프리랜서이므로 ‘해고’가 아니라 ‘교체’가 맞으며, 공정한 방송을 위해서 제작진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며 “시사프로그램은 불편부당성과 중립성을 지킬 의무가 있는데 교체된 PD수첩의 작가들은 이를 무시하는 경향성을 보여 왔다”고 주장했다.
 


이소영 작가는 “우리는 우리가 해왔던 것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적이 없었다고 믿고 있다. 제주 7대 경관도 그렇지만 하우스푸어나 민간인사찰 같은 문제를 다룬 PD수첩이 과연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 편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었는지 되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