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해고된 이용마 기자(43·노조 홍보국장)는 어버이날인 8일 이른 아침 지방에서 홀로 사시는 어머니(76)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 말을 잇지 못했다.
파업으로 직장을 잃었다는 아들의 힘든 고백에 “괜찮다. 잘 될 거다”라고 용기를 주었던 어머니가 이날만은 다른 얘기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네가 매달 보내준 용돈으로 적금을 부었는데 만기가 다 돼 간다. (월급도 안 나오는데) 찾아주겠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예년같으면 부모에 대한 효도 등을 열심히 취재했겠지만 오늘은 언론자유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반드시 이겨 공정방송으로 보답하는 것이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MBC 노조의 파업이 이날로 100일을 맞았다. 편파·왜곡보도 등 불공정 방송을 바로잡겠다고 일어선 지 석 달이 넘었지만 사태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노조는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2년간 MBC에서 일어난 불공정보도와 제작자율성 침해를 청산하려면 ‘낙하산’ 사장부터 퇴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측은 대규모 중징계와 민·형사상 고발을 비롯, 조직개편으로 ‘친정체제’를 구축하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사측은 파업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았다. 특히 지난 2~3월 노조가 자체 제작한 <제대로 뉴스데스크>가 김 사장의 법인카드 개인사용 의혹을 폭로하자 사측은 더욱 강경해졌다.
노조는 지난 2월 초 파업 이후 한 달 넘게 회사에 나타나지 않았던 김 사장이 서울 시내 호텔에 머무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어 지난 2년간 법인카드를 호텔, 마사지숍, 여성 명품 구매 등에 7억원이나 썼다고 전했다. 또 최근에는 무용가 정모씨에게 회사 후원금을 밀어주는 등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사측은 지난 2월 말 파업 주도를 이유로 박성호 기자회장을 전격 해고한 데 이어 정영하 노조위원장 등 4명을 해고했다. 중징계도 잇따라 내렸다. 노조 간부는 물론 파업에 동참한 최일구 앵커 등 32명에게 정직 1~6개월 처분을 했다. 총파업에 동참한 전국 18개 지역 노조원 57명은 현재 징계위에 회부돼 있다.
지금까지 김 사장 체제 아래 해고 6명, 중징계 103명 등 징계자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사측은 또 노조를 상대로 33억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신청하고 명예훼손 등 무더기 소송을 제기했다. 파업이 장기화하자 대체인력 확보에도 나섰다.
프리랜서 앵커를 계약직으로 5명이나 뽑은 데 이어 최근에는 임시직 기자 6명을 선발했다. 4·11총선 직후에는 김 사장 측근 인사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시사교양국을 해체하는 등 대규모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그러나 노조 파업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김 사장 퇴진을 요구하면서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에 동참하는 간부들이 잇따르고 있다. 20년차 이상 고참 사원 30여명은 무기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보도국에 이어 드라마와 예능 PD에다 엔지니어들까지 파업대열에 가세했다.
100일째 파업이 계속되는데도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김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부결시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석 달 넘게 시청권이 침해받는 데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MBC 파업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도덕성에 흠집이 있는 김재철 사장 퇴진과 함께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오는 8월 MBC 대주주인 방문진 임기가 끝나는 만큼 공영방송이 정부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공정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는 총파업 100일을 맞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무기한 ‘희망캠프’에 돌입했다. 9일에는 아나운서 조합원들이 서울 홍대앞에서 일일주점을 연다. 회사 역사상 최장기 파업 기록(50일)을 깨고 100일을 넘어선 MBC 파업이 언제 끝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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