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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김종훈과 SSM(옴부즈만)

 백병규 미디어평론가

모든 일이 그렇듯이 가끔은 돌출적인 사건이 계기가 돼 은폐됐던 사안의 전모가 드러나는 때가 있다.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 딸의 외교부 특채 임용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유 전 장관 딸의 특혜 임용 사건을 통해 외교부의 고질적인 특혜 연고 인사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폭로됐다. 더불어 공직자로서 외교부 고위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국민들이 잘 알게 됐다.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법안에 대한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발언 역시 뜻하지 않게 중소상인 보호와 통상정책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무책임과 안이한 대응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당초 정기국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상생법)’ 개정안 2개 법안을 정기국회 중에 분리 처리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이들 2개 법안의 분리 처리에 대한 중소상인들의 반발이 거세고 비난여론이 비등하자 민주당은 김종훈 본부장의 국회에서의 상생법 반대 발언 등을 이유로 당초 분리 처리 합의를 번복했다.

 경향신문은 마침 재개된 한·미FTA 재협상과 이 사안을 묶어 FTA 등 통상정책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따져보는 기획 등을 마련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경향신문은 김종훈 본부장이 ‘상생법 개정안’이 한-EU FTA와 관련해 통상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사실은 국제통상규범에 맞지 않은 ‘일방적 주장’일 뿐만 아니라, 한-EU FTA 자체가 EU의 자국 유통업 보호조치에도 불구하고 우리만 일방적으로 ‘전면개방’하고 있는가 하면 <“한·EU FTA 장애” 통상관료 한마디에 상생법 표류>(10월 26일자 3면)하고 있는 실상을 잘 드러냈다.
 
 
 또 3회에 걸친 <FTA 정책 이대로 좋은가> 기획 시리즈를 통해 당초 예상과 달리 자동차나 섬유 등 제조업 분야에서도 그다지 큰 수혜를 기대하기 어려운데도 “개방이 곧 최선”이라는 검증받지 못한 ‘개방논리’로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는 데 따른 ‘세계시장화’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제기했다. 무엇보다 정부내 협의는 물론 국회까지 무력화시키면서 ‘경제주권’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무소불위한 통상관료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신선했다.


 통상정책과 통상관료들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 때 한·미FTA를 주도했던 것도 바로 이들 통상관료들이다. 이런 추세로라면 ‘정권은 유한할지 모르나 통상관료는 영원하다’는 신조어가 나올 법도 하다. 이왕 경향신문이 ‘정부 위의 정부’ ‘권력 위의 권력’으로 군림하는 ‘통상권력’의 문제를 제기했다면 보다 깊게 이들 통상권력의 뿌리를 짚어보는 기획 같은 것을 마련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한편으로 경향신문이 10월 27일자 김진우 정치부 기자의 기자칼럼(기자메모-SSM법 표류…무능한 민주당)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김 본부장의 발언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김 본부장은 틈나는 대로 상생법이 한-EU FTA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야당이 지난 4월 임시국회에 2개의 SSM 관련 규제법안에 원칙적인 합의를 하고도 그동안 정부 통상교섭팀의 반대를 명분으로 이를 처리하지 못해 왔다는 점에서 ‘김종훈발언’을 빌미로 삼은 민주당의 뒤늦은 합의 번복은 궁색하다. 이 때문에 정부 여당은 물론 민주당 역시 대형할인마트 등 대기업 유통업체들의 로비 때문에 유통법이나 상생법 처리에 미온적이었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 왔다.

 그것은 곧 통상권력과 국내 산업기반의 붕괴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시장을 주요 무대로 삼고자 하는, 혹은 중소상인들의 영역까지 넘보면서 국내시장의 독점적 싹쓸이에 주저하지 않고 있는 대기업의 이해가 상호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상관료와 통상권력이 지금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이 이런 배경까지 파고 들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통상문제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 언어로 포장되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중첩돼 있어 언론이 그 실상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70년대식 성장신화’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이 그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이번에 한 것처럼 ‘통상권력’의 문제로 그 문제점을 구체화해 드러내고, 한편으로 미국이나 EU국가들 또한 내부적으로는 ‘대외개방’에 얼마나 신중하고 국내시장 독과점 규제에 어떤 정책을 펴고 있는지 현지 취재 등을 통해 피부에 와닿게 알려준다면 그 설득력을 더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