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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이제부턴 조중동이 알아서 하세요

유영주 언론개혁시민연대(연개련) 상임정책위원,

이상하지 않는가. 최시중 위원장이 종편을 위해 수신료를 인상하자고 역정을 낸 게 연초 일이다. 김인규 사장도 틈날 때마다 수신료 인상 의지를 피력했다. 그런데 KBS 여당추천이사들은 인상안을 단독 상정했다가 철회한 이후에 시간만 끌고 있다. 근 1년이다. 이사회가 심의.의결하면 일사천리 국회까지 올릴 수 있을 텐데, 아무리 잴 게 많다 하여도 1년 내내 방귀만 뀌고 있으니 어찌 이상하다 하지 않겠는가.
 
또 이상하지 않는가. 모두가 기억하듯이 고흥길 전 문방위원장은 갖은 수모와 난관을 물리치고 미디어법을 날치기하여 방송에 종편 진출의 길을 터주었다. 일자리 창출, 여론다양성, 글로벌 미디어기업 육성 등과 같은 종편 도입 취지를 상기하자면 종편이 안착하기까지 정치권과 규제.진흥 기구가 불철주야 합심하여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런데 바통을 이어받은 정병국 문방위원장은 ‘절대평가’의 소신 피력과 함께 다매체 다채널 무한경쟁 속에 사업자가 판단할 일이라며 손을 떼버렸다. 손을 떼는데 한나라당 안에서도 특별한 반발이 없고 종편예비사업자들도 드러내놓고 반발하지 않으니 이 어찌 이상하다 하지 않겠는가.
 
아울러 이상하지 않는가. 최시중 위원장은 이번 국감에서 신청사 모두 될 수도 있으나 모두 안 될 수도 있다는 하나마나한 말을 했다. 방통위가 기본계획서에서 밝힌 기기묘묘한 ‘2개 미만 또는 3개 이상’ 선정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작년 10월29일 헌재 판결이 나자마자 기다렸다는듯 시행령을 통과시키던 기민함을 떠올리자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야당상임위원들이 헌재 판결 결과에 따라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며 진을 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채점기준과 개수 등 세부심사기준안 제시를 차일피일 미룬다고 보기는 어려우니 이 어찌 이상하다 하지 않겠는가.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왼쪽에서 세번째)이 2009년7월22일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다가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왼쪽에서 두번째) 등에 의해 끌려나가고 있다. 경향신문자료사진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작년 국회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3일 전인 7월19일 “이 법(미디어법)은 이른바 조중동 보수언론을 어떻게 참여시키느냐 하는 게 관건”이고 “이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고, 이 법은 민생과 직결되는 법도 아니다”라는 소신을 밝혀 주목받았다. 한나라당 이데올로그들과 문방위원들이 애써 에둘러 감춰온 속내를 한 방에 한 줄로 간명하게 드러냈다. 물론 7월22일에는 민생과 직결되지 않는 조중동 보수언론 참여를 위한 국회의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3개월 뒤인 10월29일, 헌재는 한마디로 방관했다. 조중동 방송진출 가도에 걸림돌이 없었다. 법 통과 1년 반, 시행령 통과 1년이 되도록 조중동은 왜 헛물만 켜는 신세다. 어째 야속하게 시간만 잡아먹고 일은 진척이 없는가.
 
저잣거리 풍문을 종합하면 대강의 윤곽은 이러하다.
 
첫 번째 의문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즉 당정의 결심과 관련이 있다. 조중동의 바람은 KBS가 수신료를 대폭 올리되 광고수입 비중을 줄여 그 차액을 자연스럽게 광고시장으로 내주는 것이다. 손병두 이사장과 김인규 사장, 여당추천이사들이 이에 부응하고자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야당추천이사와 시민사회, 네티즌의 저항, 그리고 국민여론에 부딪혀 1년 내내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당정이 결심하지 않는데 무리수를 두는 배포 큰 인물은 없었다. 6,500원 인상안에서 4,600원 인상안으로, 4,600원 인상안에서 다시 4,000원 인상안을 던지며 어떻게 한 푼이라도 인상폭을 늘려 체면치레 구실을 찾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두 번째 의문은 조.중.동.매경 등 종편예비사업자들의 경쟁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해된다. 기대했던 수신료 인상에 따른 광고시장 파이는 불투명하고, 중간광고.가상광고와 민영미디어렙 도입 효과도 미약하다. 각종 비대칭 규제에 따른 종편 특혜를 보장한다손 치더라도 지상파방송사업자 1개 규모 정도가 자리잡을 수 있다. 예비사업자들은 1순위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고, 2순위는 불안하며, 3순위는 도태된다는 생각에 사실상 전쟁을 치루고 있다. 방통위는 기본계획안에서 종편 자본금 규모를 3,000억원으로 정했다.
 
현재 조.중.동.매경 중 자본금 3천억 이상 투입할 여력이 있는 예비사업자는 한 곳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한 곳이 1순위로 선정되고 시청률 5% 정도의 방송으로 자리잡는다고 가정하면 지상파방송 3사에 이어 광고수입 4위 정도의 위치에 랭크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참고로 방통위는 기본계획서에서 종편 정책 목표를 △융합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 △방송의 다양성 제고를 통한 시청자 선택권 확대 △콘텐츠 시장 활성화 및 유료방송 시장의 선순환 구조 확립 △경쟁 활성화를 통한 방송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을 들었다. 이 정책 목표에 부합하려면 자본금 규모가 최소 1조원은 돼야 한다.
 
이게 어렵다면 최소한 사업 1년째 영업비용의 100%, 사업 2년째 영업비용의 70%, 사업 3년째 영업비용의 50% 정도를 충당할 수 있는 최소 6,000억원은 있어야 한다. 이 산수의 셈법이 빤하니 예비사업자들의 로비가 전쟁 수준으로 가열될 수밖에 없고, 당정에 있어 미디어정책을 결정하는 꼭지에 위치한 정병국 문방위원장이 선택할 수 있는 해법은 ‘절대평가’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부쳐진 ‘사업자들이 알아서 하라’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세 번째 의문은 의기양양하던 장수가 고지에 고립되어 버티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면 이해가 된다. 백전노장이지만 물량이 고갈되고 전술이 바닥나니 전의 상실의 인상이 뚜렷하다. 최시중 위원장은 헌재 판결과 관계없이 11월 둘째주까지 종편 세부심사기준안을 보고받고 공청회와 의결 일정의 수순을 밟는다는 생각이다. 위 첫째, 둘째의 상황에다 헌재 판결 문제와 맞물려 있어 합의제의 방통위 전체모임을 쉽게 이끌어내기에 만만치가 않다. 최시중 위원장으로서는 화룡정점의 대미를 앞두고 있지만 위(청와대)에서도 아래(KBS)에서도 받쳐주지 않으니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10월 28일 헌재의 선고 목록에 부작위권한쟁의 청구가 없었다. 공개변론을 진행한 지 3개월이 되었는데, 방통위원들과 정치권과 국민들이 이제나저제나 두 눈 뜨고 지켜보는데 반응이 없다.
작년 10월29일 헌재가 “신문법 등 법률안의 가결을 선포한 것은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며 국회에게 절차상 하자를 바로 잡도록 판결했다. 그러나 국회의장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12월18일 야당 국회의원들이 미디어법 부작위권한쟁의 청구를 한 바 있다. 7개월이 지난 7월 9일 공개변론이 진행됐는데, 이번 달 선고일을 넘겨버렸다. 물론 별도의 기일을 잡을 낌새도 안 보인다.
 
헌재는 야당 의원들이 각 법률안 가결선포행위를 한 국회의장을 상대로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한데 대해 기각(신문법 6:3, 방송법 7:2)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절차상의 문제는 있지만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법률 자체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겠다” “법률안 심의 절차를 어긴 점은 인정되지만 입법절차를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며, 절차를 위법으로 보고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하는 모순된 판결로 국민적인 조롱 대상이 되었다.
 
국회의장과 국회가 자율권의 한계를 일탈하여 초래된 위법.위헌상태가 초래되었고, 이를 시정할 의지와 능력이 없어 최종적 헌법수호기관인 헌재에게 판단을 맡겼는데 헌재는 이를 다시 국회의장에게 돌림으로서 헌재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위법한 절차에 따른 심의.표결권 침해를 결정한 만큼 부작위권한쟁의 청구에 대해 국회의장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끔 판결하는 게 이치에 맞다.
 
하지만 공개변론 때 재판관들은 곤혹스러워 했다. 과연 부작위권한쟁의 청구를 판결할 능력이 있는지가 의심스러운 모습이었다.
 
“헌재의 권한침해 결정의 집행 방법에 관해서 국회법이나 국회 규칙 어디에도 그런 규정 없지요? 결국에는 없다면 국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권한 침해 있는 결정에 대해 국회의장이 청구인처럼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고 국회가 자율적으로 개선 못하고 있는 마당에 이 사건에서 또 국회의장의 부작위가 청구인 권한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받는다고 해서 청구인에게 특별히 무슨 실익이 있나요?” (A 재판관)
 
“이 사건 법률적 쟁점이 많고 어렵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연구가 많지 않고 부실하다. 저희들이 몇 달씩 고생, 연구하고 고심하고 해서 결론을 찾아 나가야 하는 대단히 선례가 없는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재입법을 하면 그 다음에 피청구인인 국회의장이 법안 가결선포행위 취소하는 등 몇 가지 상정할 수는 있는데 그런다고 해서 종전에 피청구인이 국회의원들의 심의 표결권 침해했던 하자가 치유될 수 있겠느냐 이런 문제부터 시작해서 좀. 이 문제에 대해서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B 재판관)
 
재판관들은 부작위권한쟁의 청구 결정 자체를 회의하는가 하면,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고 에둘러댔다. 간명하고 쉬운 판결을 내올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없었지만, 헌재는 10월 선고를 비껴감으로서 손상된 체면을 복구할 마지막 기회조차 내팽개칠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수신료 인상의 부담을 피하고자 결심을 미루고, 한나라당(정병국 문방위원장)은 이제 사업자들이 알아서 하라며 발을 빼고, 방통위(최시중 위원장)는 기회만 엿보고, 여기에 헌재는 세월아 네월아 한다.
 
지금까지 조중동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다 해 주었으니 이제는 조중동이 알아서 하라는 신호로 보면 된다. 그들 스스로 최고의 이념이자 가치로 여겨온 ‘경쟁’이 그들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데 더 돌보아 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성큼 다가온 파멸의 운명을 감지나 하는지 당췌 모르겠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칼럼입니다. 출처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