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초 중앙일보가 재미 교포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씨의 로비 의혹을 보도했습니다. 국방부의 무기 도입과 관련, 린다 김의 로비가 성공했는지 여부가 의혹의 핵심이었지만, 한국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건 린다 김과 이양호 전 국방부장관과의 성관계 여부였습니다. 연서가 공개된 것이지요.
그리고 언론들은 미친 듯이 보도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미모의 로비스트와 국방장관과의 염문, 천문학적 액수의 무기 로비의 키워드는 SEX와 POWER였습니다. ‘몸 로비’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수감 이틀 전인 2001년 7월5일 모 호텔 커피숍에서 인터뷰 중인 린다 김. 경향신문 자료사진
괴로웠던 시절입니다. 10여개 언론사 수습 기자들이 보름 넘게 논현동 린다 김 집 대문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사실상 린다 김을 감금한 것이지요.
동네 만화방, 식당에서 담요도 얻고, 동네 신축 공사장에서 마른 나무를 주어와 식용유 깡통에서 불을 피고 밤을 지샜습니다. 주변 빌딩 화장실에서 씻고 싸고 했지요.
가끔 1진 윤허를 받거나 때로 몰래 동네 목욕탕을 찾는 게 그나마 쉴 틈이고, 유일한 호사였습니다.
목욕탕 안에서도 핸드폰을 마른 수건에 조심스럽게 감싸 다니면서 혹시나 1진 전화가 올까, ‘너 어디냐’고 물으면 뭐라고 둘러대지 가슴 졸이며 몸의 때를 밀어냈습니다.
노숙과 불안정한 대기 생활에 따른 육체적 피로감보다 괴로웠던 것은 기자로서 자괴감이었습니다. 국방부의 비리, 로비 핵심이 아니라 린다 김이라는, 확정판결도 받지 않은 단지 의혹만이 있는 민간인을 감시하고, '부적절'하다고 규정한 사생활을 뒤쫓아야 하는 부적절한 취재 때문이었습니다.
경향신문은 덜 했다고 자위하지만, 정도와는 한참 거리가 먼 소위 중앙언론사의 보도 행태도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2000년 5월 당시 비본질적이고 비정상적인 보도 행태는 대략 제목만 봐도 아실 수 있습니다. 아래 기자, 취재진은 거의 다 수습 기자들입니다.
‘江南저택 사는 린다 김…부모는 生保者’
‘린다金, 수영복 차림 사진 찍은 일 없다’
‘린다김-기자들 숨바꼭질 거듭’
‘기자분들 아구찜이나 함께, 린다金 취재단과 한밤 식사’
‘린다김 집앞 취재진 덕에 철가방(중국집) 대박’
‘린다김 선글라스 쓰고싶다-30만원대 문의 쇄도’
가십 거리들이 1면을 도배했습니다. 모 언론사 차장급 기자는 벤츠를 몰고와 친구인 척 들어가 단독 인터뷰를 했습니다. 강남 대로에서 언론사 차량과 린다 김이 탄 차가 추격전을 거듭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언론사 차는 교통사고가 날뻔 했지요.
와중에 린다 김이 도망간 곳이 목욕탕이었는데, 유일하게 있던 여기자가 따라 들어가 인터뷰를 다음날 신문 1면에 ‘단독’ 인터뷰 기사가 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남자 수습기자들은 풀(pool)을 받기로 하고 여기자가 들어가는 것을 허용(?)했는데, 나오자마자 도망치는 바람에 닭 좇던 개꼴이 나기도 했습니다.
흥신소 직원도 아니고, 이게 기자가 하는 일인가 괴로웠지요.
린다 김과 집앞에 언론 속어로 ‘뻗치기’를 하던 기자들 간에는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게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불법감금이고 명예훼손이라며 흥분하던 린다 김도, 조카뻘 기자들이 노숙하는 게 안돼 보였는지 집안으로 오라고 해 커피 대접도 하고 했지요.
그런데, 다음날 어느 신문에는 린다 김이 사용하는 커피잔은 무슨무슨 명품 브랜드라는 기사가 나 정말 허탈해지기도 했습니다. 한 스포츠신문은 지금은 중견 유명탤런트와 린다 김으로 추정되는 여성 모델 2명이 비키니 달력 사진을 찍은 걸 대문짝만하게 보도하기도 했지요. 린다 김은 “그건 내가 아니다”고 부인했고요...
[경향신문]|2000-05-15|19면 |45판 |사회 |뉴스 |347자
백두사업 로비 의혹의 주인공인 린다 김이 14일 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집 앞을 지키던 기자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 먹자골목의 ㅍ음식점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린다 김은 당초 동생 귀현씨를 통해 "대화 내용을 보도하지 않고 사진을 찍지 않는 조건으로 노래방에 함께 가자"고 약속했다.
오후 10시30분쯤 청바지에 검은색 재킷 차림으로 집을 나선 린다 김은 사진기자들이 대기하는 것을 알고 "이러면 곤란하다, 아구찜이나 먹으러 가자"며 약속을 번복하고 여동생 귀현씨, 동생의 여자 친구, 각 언론사 기자 10여명과 식사를 했다. 새벽 1시쯤 귀가했던 그녀는 "바람이나 쐬겠다"며 택시를 타고 다시 나갔다.
이건 제가 당시 1진에게 보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사입니다. 이런 보도에 자괴감을 느꼈지만, 경쟁 구도에선 일개 수습이 감당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애초 10여명의 수습 기자들은 “이제 이런 기사도 안되는 건 절대 보고하지 말자”고 서로 다짐했지만, 그중 1명이 이미 1진에게 보고를 했다고 하자, 그 다짐이 무너지고 핸드폰을 꺼내 서로의 야근 1진에게 전화 보고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지금도 낯부끄러운 기사(바이라인은 1진 이름으로 나갔습니다만, 당시 보고하던 상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는 아직 인터넷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10년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당시 한국 언론의 선정적 보도행태에 대해 비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신정아 사건 때는 대략 떠오르실 겁니다. 미술계의 부정보다는, 신정아 개인의 사생활에 초점이 맞춰졌죠. 당시 정치부에 있었는데, 어느 신문이 ‘알 권리’를 내세워 신씨의 사진이라고 주장하며 누드를 게재한 것도 언론사의 기록될 사건, 사고일 겁니다.
2009년 7월 병원 입원 뒤 신씨의 “새우깡과 짱구를 먹고싶다”는 말도 언론을 탔지요. 경향신문도 이를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년이 지났습니다. 하이에나식 선정 보도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엔 ‘명품녀’ 보도에도, 연예뉴스를 다루는 매체 말고도 많은 곳에서 달라붙었습니다. ‘1등신문’이라고 선전하는 곳에선 1면 보도에 종합면에 1면짜리 상보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명품녀와 방송사의 진실 공방, 거짓말 여부가 그토록 파고들어야 할일인지 모를 일입니다. 읽을거리 장사일텐데, 안보 장사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명품녀의 사생활에 필사의 취재력을 보인 신문은, 박원순 변호사의 무죄 판결엔 침묵했습니다. ‘조선 TV’의 미래일 수도 있겠지요.
하나 더, 린다 김-신정아-명품녀는 여성입니다.
아마 그들이 남성이었다면, 남성로비스트에 남성 큐레이터에 남성 명품남이 비슷한 물의를 일으켰어도 같은 보도가 이어졌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김종목 기자 jomo@khan.co.kr, @jomos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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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당시 서울 논현동 린다 김 집 대문 앞에서 수습기자들 언론사 속어로 뻗치기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타사 수습 기자 얼굴은 흐리게 처리했습니다.
네...쭈그려 앉아 있는 게 접니다. 당시의 하이에나식 선정주의 보도행태를 직접 증거하는 사진이기도 하고, 제 개인으로선, 추억의 사진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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