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의 일입니다. 경향·한겨레가 조중동과 논조 대결이 심화되던 때인데, 신문공동배달 기능에 방점을 둔 신문유통원 설립을 두고 공방을 벌였습니다. 신문사들끼의 이해 관계 때문에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2006년 4월26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신문유통원 공공배달센터 1호점인 광화문 공동배달센터에서 열린 개소식 행사 모습/경향신문자료사진
당시 기사를 보면, 조중동은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이 공개한 신문사들의 유통원 설립 기초안을 인용해 경향·한겨레 등 6개사가 신문유통원 설립 경비와 운영자금으로 1651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신문유통원과 경향·한겨례 간의 권언 유착 우려도 제기했습니다. 사설로 세게 비판을 했죠. 당시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정부가 무료배달하면 신문은 뭘로 은혜갚나’입니다. 중앙일보도 “언론이 공익적 성격이 있다 해도 본질적으로 사기업인 언론사를 지원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주장했지요.
한겨레신문은 “개별 신문사와 유통원은 신문배달의 위탁·수탁자 관계일 뿐인데 이를 두고 권언유착이라고 하는 것은 과민반응 또는 의도적인 사실왜곡”이라고 반박했고, 경향신문은 “유통원은 경품경쟁으로 일그러진 신문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원은 수구신문들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유통원은 당시 여야 합의로 제정된 신문법에 근거된 것이었지요.
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26일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보도자료 제목은 ‘신문공배 반대하던 조중동, MB정부 들어 평균 190개 지국 증가’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11월 신문유통원이 설립된 뒤 같은 해 연말까지 300개 참여지국 가운데 동아일보는 27개 지국, 조선일보 9개 지국, 중앙일보 5개 지국만이 신문공동배달제에 참여했습니다. 2007년 조금 늘기는 했습니다만, 전국단위종합일간지 9개 신문사 1499개 지국 가운데 동아일보는 126개 지국(8.4%), 조선일보 58개 지국(3.8%), 중앙일보 69개 지국(4.6%)에 불과합니다. 당시 ‘참여의사가 없다’고 밝힌 지국장들의 39.6%는 “본사 방침과 달라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고, ‘참여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지국장들의 57.1%도 “본사의 방침이 정해지지 않아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습니다. 본사가 지국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지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앞다투어 가입합니다. 실제로 2008년 말 기준으로 동아일보는 269개 지국(전년대비 2.1배 증가), 조선일보 155개 지국(2.7배 증가), 중앙일보 190개 지국(2.7배 증가)이 합류했고 2009년 말에는 동아일보 지국은 336개 지국(67개 지국 증가), 조선일보 196개 지국(41개 지국 증가), 중앙일보 239개 지국(49개 지국 증가)이 신문공동배달제에 참여했습니다.
최문순 의원은 “신문유통원 설립 당시 메이저신문들은 ‘정부가 무료배달하면 신문은 뭘로 은혜를 갚아야 하느냐’며 줄곧 ‘정치적 반대’를 외쳐왔다”며 “신문산업 전반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제는 정치적 왜곡행위가 사라져야 한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습니다.
웃찾사의 개그 코너처럼, 그때그때 다른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영호 당시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이런 뒤집기를 예견했던 걸까요. 2005년 7월21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 제목은 “정말 지원 안 받을 건가?”입니다. 이 칼럼에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옮겨 놓습니다.
오는 28일 시행을 앞둔 신문법보다 더 기구한 운명을 갖고 태어난 법은 없을 듯싶다. 언론운동진영이 지난 10년간 세 차례나 입법청원해서 겨우 햇빛을 봤지만 국회에서 난도질을 당해 성한 곳이 없다. 그나마 신문산업 진흥을 위한 조항은 불구의 형태지만 살아남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데 신문재벌들이 그 형체만 남은 신문법을 물고 뜯으며 위헌이라고 난리를 핀다. 여기에 한나라당이 맞장구친다.
신문시장은 돈 놓고 돈 먹는 노름판을 닮았다. 신문 1부를 확장하려면 돈이 10만원 꼴로 들어간다. 신문을 몇 달씩 공짜로 주고도 모자라 자전거니 비데니 하는 따위를 주며 남의 독자를 뺏어간다. 지난 4월 포상금제가 실시되어 사정이 조금 달라졌지만 말이다. 결국 밑천 많은 신문재벌들이 시장을 싹쓸이했다. 나머지 신문들은 독자를 너무 많이 뺏겨 보급망이 거의 무너져 버렸다. 구독신청이 들어와도 지역에 따라서는 배달이 어려운 형편이다. 이대로 두면 신문재벌들을 빼고는 다 죽을 판이다.
문제는 독자이다. 대도시에서도 보고 싶은 신문을 골라서 볼 수 없는 곳이 많다. 신문재벌들도 면단위 지역에는 보급망이 붕괴되어 배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 까닭에 독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려고 공동배달제를 도입했다. 신문유통원이 그것이다. 정보의 유통경로를 확충하기 위해 정부지원을 통해서라도 전국적인 배달망을 구축하자는 취지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다양한 여론의 존중이다. 신문유통원의 설립은 바로 그 여론다양성을 보장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신문유통원은 배달기능만 가져 경영에 간여할 수 없다. 참여의사가 있는 모든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에게 열려 있다. 특정매체를 배제해서도 안되지만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조·중·동은 친여 매체만 지원한다느니 정부지원을 받는 매체가 어떻게 정부를 비판하겠느냐고 트집잡는다.
앞으로 전국적인 배달망이 구축되어도 조·중·동은 유통원에 정말 참여하지 않을지 묻고 싶다. 신문구독률이 급속히 하락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과중한 배달비용을 부담하며 자체 보급망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서 묻는다.
신문발전기금도 여론다양성과 신문산업 진흥을 위한 제도이다. 한국신문은 사내 재교육이 전무한 실정이다. 그런데 이 법은 공동으로 연수기구를 만들어 운영하면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종사자의 자질향상을 통해 언론발달에 기여하자는 취지다. 독자권익과 언론공익을 위한 사업에도 지원이 가능하다. 신문의 공공성-공익성을 살리고 독자의 반론권도 존중하자는 의미다.
구독료 지원사업도 편다. 어느 신문이나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지원을 받을 수있다. 그런데 조·중·동이 그토록 집요하게 공격하니 절대로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앞으로 정말 안 받을지 두고 볼 일이다. 다매체·다채널이란 언론환경의 변화에 따라 신문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에 신뢰의 위기마저 겹쳤다. 구독률·열독률 하락이 그것을 말한다.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불황산업이라 공동대책이 시급하다. 그래서 언론운동진영이 정부지원을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신문재벌들은 경영상태가 좋아서 그런지 신문산업 진흥책을 마구 헐뜯는다. 안 받는 것은 자유지만 다른 동업자마저 못 받게 하겠다는 투이다. 헌법위반이니 언론탄압이니 해서 하도 북새질치니 말 바꾸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렇더라도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를 그만 부렸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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