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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문화비평]‘세습사회’ 부추기는 TV 예능

좀 철 지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 말이다. 강남 아이들이 외고, 과학고를 거쳐 명문대를 휩쓸고, 경제력 좀 있어야 로스쿨도 가고 판검사 꿈도 꾼다고 한다. 물려받은 게 없는 이들은 용이 되기 어렵다고들 한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그렇게 믿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된 일은 아니다. 내세울 것 없는 배경이지만 꿈과 노력만으로 부자가 된 사람도 석학이 된 사람도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이 나라의 대통령들 또한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해 ‘용이 된’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지금의 대통령이 부모의 후광 없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믿기는 어렵다. 지금 국내 최대의 기업을 이끄는 이들 또한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성공을 발판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중턱에 내려 등산을 시작하니, 보통 사람들이 아무리 새벽부터 일어나 숨을 헐떡이며 올라와도 경쟁이 되기 어렵다. 불공정 게임이다. 케이블카건 헬기건 위법은 아니라 하고, 종종 부모보다 나은 청출어람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목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운하진 않다. 자신의 노력이 남들의 유산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그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는다. 핵심은 세습이다. 기업의 세습, 지역구 세습, 인맥의 세습.

조재현과 딸 조혜정_경향DB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인 <아빠를 부탁해> 역시 세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권력이나 재력을 그대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니 세습이라는 용어가 적절하지는 않겠으나, 스타로서의 힘을 가진 아버지가 스타 지망생인 딸을 (결과적으로) 지원하는 이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서먹한 부녀관계의 복원을 예능으로 풀어보겠다는 기획 의도는 나쁘지 않다. 나름 신선한 아이디어다. 그런데 왜 출연자는 대부분 신인 연기자이거나 연영과 재학생일까?

아마도 이전에 <붕어빵>이나 <아빠 어디가>가 없었다면 이런 (당사자들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의심과 떨떠름함이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시청자들은 연예인 가족이 스타가 되는 모습을 봤고, 여러 광고에 겹치기 출연하는 모습을 봤다. 어떤 이들은 아주 활동적인 연예인이 되었음을 또한 안. <K팝스타>에 얼굴이라도 내밀어 보려고 몇 달을 연습해온 가수 지망생이나 수백군데 오디션을 보며 연기자의 꿈을 못 버리는 배우 지망생들에게 스타의 자녀들은 국회의원의 아들이나 재벌의 딸과 다르지 않다. 이 스타 지망생들은 텔레비전에서 스타의 자녀들을 보면서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게 우리 사는 세상이려니 하며 무력해할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세상. 성실하게 일해도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할 거라 믿는 청년들과 다르지 않다.

<아빠를 부탁해>의 ‘아빠’들과 얼추 비슷한 연배인 주위의 친구들은 많은 부분 공감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시종일관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내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단다. 텔레비전 속 주인공이 인기인이라서만은 아니다. 일단, 경제적으로 풍족해 보인다. 출연자 중 한 명이 졸업한 뉴욕의 연기학교 학비가 얼마라는 보도도 나왔다. 집도 널찍하다. 깔끔한 부엌은 내 집의 옹색한 부엌보다는 고급 펜션의 그것에 가깝다. 더 감정이입이 안 되는 이유는 아빠의 여유로운 시간이다. 출근에 늦어 허둥대는 모습도 없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딸과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빠 어디가>에서 수시로 여행을 가는 아빠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잠시지만) 육아에 전념하는 아빠들, 모두 내 주위 가까운 사람 중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만 아빠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들을 ‘판타지’로 즐길 수밖에 없다. 현실성 없는 먼 나라 큰 성에 사는 아빠들인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들의 자녀들도 그 성에 진입하고 있다. 아주 쉽게.

민주적이고 역동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 세습의 고리를 끊기 위한 장치들이 만들어졌다. 신분제가 없어졌고, 상속세가 생겼다. 공정한 경쟁이 강조되었다. 그런데 왜 연예계는 거꾸로인가? 시청률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연예인 가족에게까지 열렬한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 심리가 무엇인지, 그게 바람직한 경향인지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그 심리를 이용해서 시청률 장사를 하려는 방송사가 너무 게으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세습사회’의 각인을 찍어주는 원치 않던 효과를 만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불공평한 세상이다. 노력하면 용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차차 사라져 간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이 계몽의 주체가 될 필요는 없지만, 세습사회 불씨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을까?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