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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시론]메르스 사태에 방송 공정성을 다시 생각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가 단기에 끝날 것 같지 않다니 걱정이다. 그렇다고 격리 해제를 앞당겨선 안된다. 감염병 대처 매뉴얼도 없이 헤매다 문제를 키웠는데, 뒤늦게라도 철저히 의학적 처방에 따라야 한다. 의료진과 공무원들은 사스(SARS)를 막아냈던 때 그대로인데, 시스템이 엉터리였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초기에 정보 공개를 막은 것은 큰 오판이었다. 감염된 병원들을 뒤늦게 공개하면서 해당 병원의 방문자들에게 신속히 신고해 달라고 요청하니, “정부는 지각 대처하면서 국민에게만 제대로 해달라는 거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메르스 관련 정보가 아직도 제한적이어서 막연한 불안감이 퍼져있는 상황이다.

모든 국민이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처해야 조기 종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금 당장 재난방송을 검토해야 할 것 같다. 아직까지는 각 방송사들이 알아서 하는 ‘자체 재난방송’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나 국민안전처가 현재의 ‘주의’ 단계를 ‘심각’ 단계로 올려야 공식적인 재난방송이 시작될 수 있다. 현행 감염병예방관리법과 그 시행규칙을 찾아보니 사스나 신종플루는 외국에서 유입된 감염병인 제4군에 명기돼 있으나 메르스는 그 어디에도 근거 규정이 없다.

재난방송은 그 자체가 정부와 국민을 함께 비상체제로 돌입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1년여 전 세월호 참사 때 오보와 편파방송 때문에 홍역을 치렀던 것을 반면교사로 새겨야 한다. KBS와 MBC가 그때 재난방송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해서 국민의 박수를 받았더라면,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KBS의 수신료 인상도 해결됐을지 모를 일이다. 이달 초 KBS와 EBS의 사장들이 연달아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으나 반응은 싸늘한 것 같다.

수신료 인상은 국민을 납득시킬 만한 선행요건을 이행해야 가능하다. 말할 것도 없이 방송공정성의 보장이다. 공정성을 특정 정부나 사장의 선의에 맡겨놓아선 안된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누가 사장이 되든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바탕으로 공정방송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확립돼야 한다. KBS 사장을 단순 다수결로 선임한다는 것은 여야 추천이 7 대 4인 현행 이사회 구조에서 그냥 정부 여당이 임명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정치적 중립과 독립은 불가능하다. 편성규약과 편성위원회도 구속력이 없어서 실효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입법화해야 한다는 것이 KBS 기자와 PD들의 요구다.

방송공정성 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종편 방송사들에 대한 중간점검 결과를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4일 발표했다. 방송공정성에 위배되는 오보, 막말, 편파 방송이 지난해에 비해 평균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3월 재승인 심사에서 종편 방송들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조건부를 부여받았다. 방송의 공적책임 및 공정성 확보방안을 마련하고 콘텐츠 투자계획을 성실히 준수하라는 것이 핵심 조건부였다. 이어 심사위원회는 각 종편별로 권고사항을 부여했다. 막말 편파 방송으로 제재를 가장 많이 받고 보도 분야의 과다편성으로 비판받아 온 종편(ㄱ)에 “종편PP의 위상에 걸맞은 수준으로 보도 프로그램 편성비율을 낮출 것”을 권고했다. 막말 편파로 인한 제재 2위의 종편(ㄴ)에는 “공익적 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을 확대하라”는 권고가 떨어졌다.

그런데도 ㄱ종편의 경우 지난해 97건의 심의조치로 ㄴ종편 41건의 두 배 이상이고, ㄷ종편의 16건에 비하면 무려 여섯 배도 넘었다. 더구나 이 막말 편파 방송의 선두주자인 ㄱ종편은 심의조치 건수가 2012년 10건, 2013년 29건으로 재승인 조건을 이행하기는커녕 그 전보다 3~9배나 늘었다. 분야별 편성비율도 보도 51.0%, 교양 28.4%, 오락 20.6%로 보도 비중을 낮추라는 심사위원회의 권고사항을 거슬러 역주행했다. 제재 2위인 ㄴ종편의 경우 보도 44.2%, 교양 35.6%, 오락 20.2%로 역시 종합편성에 걸맞지 않은 불균형이었다. 막말 편파 방송이 많은 종편일수록 보도 편성비율이 높다.

민주정책연구원과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주최로 지난 해 12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종편 3주년 현황 및 평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종편 도입 이후 보수편향 언론구조, 광고 특혜, 자체 콘텐츠 투자계획 위반 등 문제점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출처 : 경향DB)


지난해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회는 전원이 민간 전문가들로 꾸려졌다. 그 심사위원회가 종편들에 부여한 조건부와 권고사항이란 사실상 사회적 합의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도 방송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심사위의 지적사항이 더 악화돼 가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방송공정성은 재난방송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 내용인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총선거, 그리고 지방선거의 공정성을 좌우하는 요건이다. 방송공정성에 대해서는 이제 조건부 재승인이 아니라 재승인거부가 예고된 ‘임시재승인’ 제도를 검토해야 할 이유다.


김재홍 |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방송평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