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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문화비평]‘패밀리테인먼트’의 탄생과 환멸

요즘 TV를 켜면 가족과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가상 신혼부부 이야기 <우리 결혼했어요>와 그 올드 버전 <님과 함께>, 연예인 아빠와 딸의 관계 회복을 조명한 <아빠를 부탁해>, 부모와 자녀의 갈등 문제를 솔직하게 다룬 <동상이몽>, 아빠의 열정 육아를 뽐내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1인 가족의 세태를 그린 <나 혼자 산다>, 중년부부 간 ‘화병’의 속내를 밝히는 <아내가 뿔났다>, 유명 연예인과 사춘기 자녀들의 토크배틀 <유자식 상팔자>, 남한 연예인과 탈북 여성의 가상 결혼 생활을 그린 <남남북녀>, 그리고 올 초에 종영된 아빠와 자녀의 리얼 여행기를 담은 <아빠! 어디 가?>에 이르기까지 TV는 가족에 대한, 가족에 의한, 가족을 위한 바보상자가 되었다. 과거 가족은 주로 일일 혹은 주말 드라마의 주요 소재거리였지만, 지금은 예능 프로그램이란 약방의 감초가 되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가족이 이 정도 칙사 대접을 받는다면, 이를 ‘패밀리테인먼트’라 불러도 전혀 어색할 게 없다.

왜 이토록 많은 패밀리테인먼트가 생겨났을까? 아무래도 가족의 해체, 가족의 위기라는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사태는 가족, 혹은 가장을 초토화시켰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중년의 아빠, 안정된 생활을 누리다 졸지에 거리에 나앉은 가정을 지켜보며, 가족은 이제 다정한 비둘기 둥지가 아니라 참혹한 전쟁터가 되었다. 주지하듯이 청년실업으로 연애, 결혼, 출산을 애당초 포기한 삼포세대들은 인간관계, 집, 꿈, 희망을 상실하며 오포, 칠포세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결혼 건수는 총 30만5500건으로 전년 대비 7400건이 감소했다. 초혼 연령도 남자는 평균 32.4세, 여자는 29.8세로 10년 전에 비해 남자는 1.9세, 여자는 2.3세 높아졌다. 이혼은 총 11만5500쌍으로 전해보다 200쌍이 증가했다. 결혼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이혼은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은 우리 시대 가족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2015년 1인 가구는 대략 506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27.1%나 된다. 1인 가구는 독신자의 즐거운 선택이 아닌 사회적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연령별 1인가구 비중(2010~2035)_경향DB


패밀리테인먼트는 이러한 가족의 위기, 혹은 가족 형태의 변화 국면에서 태어났다. 가족관계의 이러한 변화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많은 패밀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생겨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 점에서 예능 프로그램은 시대의 초상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문제는 그 반영의 방식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가족의 재현은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기는커녕, 가족주의에 대한 강요, 가족제도에 대한 환멸감을 심어준다.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가족에 대한 포비아를 느끼는 것은 왜일까?

멋지고 예쁜 아이돌들이 출연하는 가상 신혼부부의 로맨틱 스토리를 통해 우리는 결혼이란 공포의 현실을 망각하고, 오로지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운 결혼의 꿈과 환상에 취한다. 인형보다 예쁜 가상 커플들이 연출하는 ‘사랑’의 시나리오 앞에 가족은 에덴동산이 된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판타지는 속으로 ‘너희들은 절대 결혼할 수 없어’를 잔인하게 외친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올드 버전, <님과 함께>에 그려진 만혼의 두 커플의 사랑 이야기는 결코 결혼할 수 없는 노총각, 노처녀들을 위한 대리만족의 극장이다.

<아빠를 부탁해>는 아빠와 딸의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딸들의 공공연한 연예계 데뷔 무대로 활용된다. <동상이몽>은 나름 진지한 부모와 자녀 관계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듯하지만, 대결관계가 각본에 맞춘 듯 인위적이고 일부 장면은 선정적이기까지 하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가사에 소홀한 아빠를 소환하여 다시 ‘워킹 대디’의 히스테리로 전환시킨다. 뭐든지 잘하는 슈퍼 아빠 앞에서 다시 주눅이 드는 리얼 아빠들. <나 혼자 산다> 속 독신자의 꿀꿀함 모드는 답이 없다. 그것은 솔직한 게 아니라 가학적이다. 그들 나름의 즐거움과 자발적 소일거리마저 안쓰럽다. 그리고 <남남북녀>에 나오는 남한 남자와 북한 여자의 일상의 재현은 엽기적이고 심지어는 ‘일베’의 정치 혐오를 생산한다.

패밀리테인먼트가 가족의 해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른바 ‘가족 구하기’라는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사기다. 패밀리테인먼트는 ‘가족’이란 환멸, 가족을 이용한 사익 추구의 환멸을 줄 뿐이다. 이경규, 강석우, 김구라, 김성주, 송일국 등이 TV에서 수없이 말한 자기 가족 이야기들은 가족을 정말로 꾸리고 싶어하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공정하지 않은 게임의 룰을 강요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소유한 가족들의 기만술이며, 모든 것을 소유하길 욕망하는,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것이 결핍된 가족들을 호명하려는 환멸의 언술이다.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