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까칠남녀>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란은 이미 여러 지면에서 다뤄진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까칠남녀> 논란은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EBS 누리집의 CEO 메시지에는 “모두 함께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생명, 배려’의 시민교육의 가치를 다시 살려내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여기서 “모두”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그동안 이 “모두”가 사실은 모두가 아니었다는 점, 모두에게 시민의 자격이 부여되지는 않았다는 점은, 최근에 와서야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남성 시민을 기준으로 하는, 사실상 일부를 “모두”로 간주해 왔었던 문제가 이제야 사회적 담론의 장에 들어서고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논의를 통해,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모양이어야 하고 어떤 법이, 어떤 제도가, 어떤 노력이, 어떤 시민교육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소중한 일이다. <까칠남녀>는 정확히 이러한 미래 세계를 그려보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의 의의가, 성소수자 패널에 대한 일방적 하차 결정이라는 사건으로 사라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것도 언론의 자율성과 미디어 다양성이 침해당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번 하차 결정은, 그 어떤 이유를 대는가에 상관없이, 그 결과만으로 분명하고 명백한 효과가 있다. 최근 국회 헌법개정특위 헌법개정안의 “성평등” 개념을 둘러싼 논란, 충남인권조례의 폐지를 둘러싼 논란과 그 맥락이 같다. 이 사건은 “모두”를 위하기로 한 교육방송이, 일부 특정 종교 세력의 항의 시위에 반응하여, 이제까지 “모두”에서 밀려나 있었기 때문에 가시화부터 시작해야 하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한 사건이다.
과거의 일을 어떻게든 문제화하여 패널 개인의 자질을 문제 삼으려는 의도는 분명했다. 존재를 부정하고 이 사회의 “모두”에 포함시키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방송국의 대처는, 안타깝게도 언론 자율성과 미디어 다양성의 가치를 수호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란을 제거하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소란이 제일 두려웠던 것이라고 추측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소란이 없는 합의 상태로 생각하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모두”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면 각종 갈등과 소란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이 갈등과 소란 속에서 지워지기 쉬운 약자의 목소리들을 가시화해주고, 문제 해결을 위해 모두 함께 노력하는 사회적 논의의 장이 필요하고, 이것이 방송의 역할 중 하나이다.
이번 출연진 하차 결정은 이 장을 만들어 왔던 EBS의 공을 모두 무위로 돌린다. 아니, 단순히 무위를 넘어 사회적 악영향을 초래한다. 특정 종교 세력이 성소수자의 존엄을 위한 노력과 대결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에게 힘을 실어준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특정 종교 세력의 성소수자 혐오를 승인해 준 셈이다. 인간의 존엄을 인정하지 않고 존재를 비가시화하려는 시도로,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인권 가치에 해가 되는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같은 상황은 논란 해결을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훼손된 언론 자율성과 미디어 다양성의 가치를 생각할 때 문제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미디어 다양성의 목표는 단순히 많은 채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들이 자유롭게 생산되고 유통되고 이용되는 것에 있다. 따라서 다양성 보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미디어에 등장해야 하고 이들의 의제들이 계속해서 기존 의제에 추가되면서 확장되고 협상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다양성 가치가 분명한 의도와 맥락과 목적이 있는 민원 즉 소란이 있다는 이유로 훼손되었다. 이런 일은 이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란을 일으키면 된다는 효능성을 이미 검증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언론 자율성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될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세력은 계속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고, 언론이 그때마다 개인의 자질이나 도덕성 문제라는 핑계를 스스로 승인해주면서, 미디어 다양성이 훼손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개인의 자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언제나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개인의 자질을 왜 이제 와서 문제 삼게 되었는가이다.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문제였다는 것. 그것이 바로 “모두”를 위한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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