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직접민주주의를 통해서만 비로소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민이 주인이라는 뜻이고, 주권자가 올바른 정보를 획득하고 판단하여 자신의 권리를 직접 행사하는 경험을 함으로써 비로소 주인임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일정한 기간마다 대표자를 뽑는 투표행위를 하는 것이 전부인 현 제도 아래서 주권자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관점에서 보면 결정과정에 아니면 결정과정의 논의에라도 참여하는 것이 확대되어야 바람직하다.
정부나 기업들은 매체 기술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플랫폼을 도입할 때마다 그 플랫폼이 지니는 쌍방향 또는 직접 민주주의적 소통의 강화 가능성을 특징 또는 장점이라고 부각했다.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 수용자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바뀔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 TV 도입 때도 그랬고, IPTV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의 도입은 정보민주주의라고 열광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직접 소통하며, 마치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의 상황에 이르렀다.
한편 신문 구독률이 떨어지고, 본방 사수라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전통적인 매체들은 쇠락하고 인터넷 포털이나 SNS를 통해서 정보를 얻고 소통하는 상황이 심화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70%에 가까운 사람들이 인터넷 포털을 언론매체로 인식한다고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종이신문이나 방송의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접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기사를 접해도 그 기사가 어느 매체가 생산한 건지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전통적인 매체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는 PC를 통해 인터넷을 검색하기보다 SNS에서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주소를 클릭하여 정보에 접근하고, 그 정보와 관련하여 의견을 교환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매체의 존재는 더욱 희미해졌다. 하지만 이게 바람직한 현상일까?
직접 민주주의적 소통의 강화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금의 현상을 직접 민주주의적 소통이 강화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화두 중 하나는 가짜뉴스다. 그리고 가짜뉴스의 주요 유통 경로는 SNS다. 사람들이 가짜뉴스만을 접하면서 이것이 가짜뉴스임을 분별할 가능성은 영에 가깝다. 기술적으로 직접민주주의 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SNS가 민주주의의 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피쉬킨은 (숙의)민주주의의 전제 조건 중 하나로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민주주의 과정 참여자들이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은 시민 참여 담당 매니저의 블로그 글을 통해 소셜 미디어가 쟁점 토론, 시민 조직화, 정부의 책임 추궁 등 정부에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 도구로서 지니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짜뉴스 범람이나 유통에서 본 바와 같이 정치적 혼란을 야기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짜뉴스의 유통과 페이스북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던 과거의 방침에서 극적인 자세의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때 산토끼 집토끼라는 말이 유행했다. 소통은 사라지고 끼리끼리만 뭉친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의 정보 습득은 인터넷 검색이나 SNS에 의존하면서 편협해지고, 양극화되고 있다. 더군다나 가짜뉴스까지 끼어들면서, 그 대립은 사회를 쪼갤 정도로 심각하다. 사회가 신뢰할 만한 정보와 해석을 제공할 전통적인 매체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또 전통적인 매체의 직접 수용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정보 습득이 편협해지는 문제가 심각하다.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다. 사회는 전문가(스페셜리스트)가 되라고 강조한다. 물론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는 고립된 개인의 집합체가 아닌 상호의존적인 존재들의 구성체이다.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 없이 특정 분야의 업무가 잘 이루어질 수도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주권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도 없다. 민주주의 시민은 종합적이고 체계적 인식을 가진 존재여야 한다. 여기에 매체의 존재 이유가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함은 물론 시민이 주권자로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종합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최근 권력에 부역했던 사장들을 해임하고 공영방송 기능 원상회복의 시동을 걸면서 방송 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저질 프로그램 경쟁으로 악화됐던 방송 현실이 공영방송 중심으로 양질의 콘텐츠 경쟁이 진행되면 나아질 것이다. 반면 신문은 신뢰를 회복하고,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종합적·체계적 사고를 하는 존재로 성장하는데 기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모든 신문이 그럴 수는 없겠지만, 신문에도 신뢰에 기반을 둬 기사의 질로 선도하는 중심 언론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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