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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진실 추구에 끝은 없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외려 말 한마디로 남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말의 신중함을 의미한다. 개인도 그렇지만 영향력이 큰 언론은 더욱이나 보도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언론의 오보가 국가나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이나 언론이 특정 시점에 반드시 진실만을 전달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오보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초 진실의 전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오류 발견 시 오류를 시정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다. 법에서도 정정보도, 반론보도, 추후보도청구권 등을 규정하여 오류를 시정하고 피해를 구제하도록 하고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특히나 추후보도의 정신이 중요하다. 즉각적인 정정보도도 중요하지만 진실이 입증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사안도 있기 때문이다. 각종 사건이 터지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던 언론들이 피의자가 수년에 걸쳐 투쟁한 끝에 무죄판결을 받아도 그 사실을 단 한 줄로도 전하지 않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KBS 정연주 전 사장의 부당 해임을 정당한 듯이 보도했던 언론들 중 정 전 사장이 모든 소송에서 대법원까지 승소했음을 보도한 언론이 몇이나 될까?

 

최근 수도권 상수원인 한강 상류에서 실지렁이가 발견되었다. 실지렁이는 시궁창에나 서식하는 것으로 환경부가 수생태 4급수 오염지표종으로 지정한 것이다. 충청 지역의 상수원인 금강, 부산 경남 지역의 상수원인 낙동강에 이어 들려온 소식이니 전국의 주요 상수원이 심히 오염됐다는 뜻이다. 녹조라떼 소식을 뛰어넘는 심각한 이야기다.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4대강을 보로 막아 사실상 물이 고이면서 발생한 오염 현상임을 지적한다. 4대강 공사 이후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녹조 현상에 이은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자명한 진리를 부정하며 4대강 ‘토목’ 공사에 찬성했던 언론들은 지금 이 시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오류를 인정하며 이제 명백한 증거로 입증된 4대강 보의 위험성을 적극 알려야 그나마 지금까지 사회가 입은 피해에 대해 속죄하는 길일 것이다. 그런데 그때 찬성했던 언론들 중 반성하는 언론은 없어 보인다. 백번 양보해 그들이 지금도 4대강 오염의 주범이 4대강 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를 공론화해 진실을 확인해보려는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일 것이다. 4대강 사업 완공 이후 오염이 심해진 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보 때문이라는 논리적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난망하다. 4대강 사업이 종료할 즈음인 2013년 1월 감사원은 2차 감사에서 토목공사의 부실 위험성과 더불어 수질 악화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 여름 심각한 녹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요 언론들이 애초 보였던 4대강 사업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 그리고 정치적 고려 없이 냉정하고 허심탄회하게 수질 오염 그 자체에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지금 실지렁이를 만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을 찬성했던 주요 언론들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했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들은 국민검증단을 꾸려 조사하고 2013년 8월19일 4대강에서 녹조로 인한 수질 오염, 보를 중심으로 상·하류의 세굴과 재퇴적, 지류 역행침식, 수변 생태계 교란 등의 위험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에 따르면 이 시기 동아일보는 4대강 사업이 녹조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반박하는 기사나 내보냈고, 중앙일보는 토목공사의 비리에는 주목하면서도 4대강 사업이 초래한 결과에 대한 위험성은 다루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오히려 당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낙동강 녹조 확산이 4대강 때문이라고 청와대에 보고한 것이 적절한지를 따질 뿐이었다.

 

방송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KBS, MBC, SBS 모두 폭염에 따른 수온증가가 녹조 확산의 원인이라고 보도했을 뿐이다. 환경단체의 주장은 반박하기 위해 짧게 언급할 뿐이었다. MBC는 심지어 원인은 중요하지 않고 피해의 크기가 중요하다며 원인에 대한 관심을 회피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녹조에 이어 2014년에는 큰빗이끼벌레라는 북미산 태형동물이 2m 정도 되는 것까지 발견되었다. 토종 물고기들이 사라지고 부영양화에 의한 녹조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때도 지상파 3사는 보도하지 않았다. 결국 올해는 실지렁이들이 금강, 낙동강에 이어 한강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데 의연해야 한다. 언론 활동의 목적은 언론의 무오류성을 강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전달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4대강 사업을 찬성했든지 간에 4대강 사업이 혜택은 없이 피해만이 명백해진 이 시점에 이르러서까지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매우 심각하다. 수용자들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언론이 사회를 비판 감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수용자의 불신은 점증할 뿐이다.

 

뉴욕타임스가 2014년 161년 만에 이름의 철자를 잘못 쓴 오보를 정정했다. 1853년 영화 <노예 12년>의 주인공 솔로몬 노섭의 철자 northup를 northurp로 잘못 기재한 것을 인정하고 정정한 것이다.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또 다른 상징적 제스처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제스처조차도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전 국토의 젖줄인 4대강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진실을 추구하려 노력하거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일부 주류 언론들의 태도 때문이다. 진실을 확인하는 과정에 끝은 없다. 4대강의 재앙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우리 언론들은 오류를 인정하고 그 해법을 찾는 더 큰 공론장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김서중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