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에 맞서 공정방송 투쟁을 하다 해직됐던 언론인 이용마 기자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해직 중 암이라는 복병을 만나 고생하다 문화방송 정상화 이후 단 하루의 복직만을 경험했을 뿐 마지막까지 암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이용마 기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암 투병만 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공정 방송을 억압하려는 다양한 세력에 맞서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제도의 도입을 꾸준히 주장했고 곳곳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소위 ‘이용마법’이라는 방송법 개정안이 나온 것도 이용마 기자 덕이다. 임명권자의 눈치만 보며 왜곡 방송을 주도했던 사장의 선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주장이었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사실상 시민이니 시민이 사장을 선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이재정 의원이 주도하여 이 내용을 담은 방송법안을 제출해놓았다.
KBS는 법이 바뀌지 않았지만 이사회의 결의로 벌써 두 번이나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사장을 선출했다. 국회의 행태로 보아 빠른 시간 안에 해결될 것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방송을 장악하고 싶어 하는 세력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이용마법을 기본으로 하는 방송법안이 통과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법 통과와 제도의 정착을 기대하며 이용마 기자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그런데 이용마 기자가 추구한 공정 방송의 목적이 사장 선출 제도였을까, 아니면 진실 보도였을까? 사장 선출 제도는 그 수단일 뿐이다. 정권의 눈치나 보며 진실 보도를 막는 사장이 뽑히는 일은 없도록 해달라는 뜻일 것이다. 목적은 공정 방송 그리고 진실이다. 진실 보도는 제도로 보장하면 좋지만 제도가 없더라도 언론인들이 포기할 수 없는 언론인의 사명이다. 공영방송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진실 보도는 모든 언론이 언론으로 존립하기 위해 추구해야만 하는 기본가치다. ‘뉴스타파’의 프로그램 말미에 항상 등장하는 고 리영희 선생님은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진실”이라고 말한다. 소위 애국을 내세우는 것보다, 진실을 지키는 것이 결국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 모두에게 궁극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런 의미에서 요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반일 종족주의’를 다루는 언론 행태의 문제가 심각하다. 소위 실증주의, 즉 사료에 기반을 두고 내린 결론이라는 주장 아래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일본군 위안부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발적 매춘행위였고, 강제동원도 없었고, 일제강점기 시절에 수탈은 없었고 오히려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교보문고가 지난 23일 발표한 8월 셋째 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반일 종족주의>는 전주와 같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계 전문가들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일부만 남은 사료를 사용한 오류, 잔존하는 사료의 무리한 일반화, 사료의 잘못된 해석, 다른 사료의 이해 부족 등 연구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반면에 대부분의 언론은 반일 종족주의 문제를 친일·반일 구도에서만 다룰 뿐이다. 국민정서법에 따르면 반일 종족주의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사료에 기반을 둔 ‘진실’ 접근이라 주장하는 프레임을 앞세운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 ‘반문’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이들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정치적 이득을 꾀하는 일부 언론들의 행태가 사회 일각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 친일·반일 구도만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 게 적절할까?
‘반일 종족주의’ 프레임을 앞세워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에게 대응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무엇이 진실인지 밝히는 일이다. 역사적 진실은 명백한데 이제 와 밝힐 게 뭐가 더 있냐는 주장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문’이라는 외피를 쓴 왜곡된 논리가 일부에서 반향을 일으키는데 학문적 논쟁 없이 친일·반일 구도만 강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오해와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지금 언론이 할 일은 리영희 선생님이나 이용마 기자가 추구한 진실에 충실한 보도를 하는 것이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 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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