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공간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우리 언론 보도에 대하여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문제 제기해 온 것이 있다. 바로 가해자나 피고인의 말을 인용하고 강조해주는 보도 관행이다. 이러한 보도 관행은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행 사건에서 암묵적으로 가해자에게 그런 폭력을 행사할 이유가 있었다는 인식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비판을 받아 왔다.
일본인 여성을 폭행한 가해자의 단독 인터뷰 보도, 여성과 헤어진 후 여성을 납치한 가해자의 동기를 수사담당자의 말을 통해 보도한 사례, 길거리에서 폭력을 행사한 남성의 말을 제목으로 인용해준 사례 등 최근 보도만 보더라도 문제 사례가 차고 넘친다. 일본인 여성 폭행 사건의 경우 양측 입장을 반영하는 형식적인 객관보도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 언론사는 피해자가 연락되지 않았다는 변명을 달았지만, 피해자가 연락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해자 측의 인터뷰를 단독 보도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최소한의 윤리적 검토를 해야 했다.
한편, 우리 언론사는 수사담당자 말을 보도하는 것은 취재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보도 요건을 충족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수사담당자의 말 중 어떤 내용을 보도할 것인가는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취사선택의 문제이다. 일부 방송 보도에서 수사담당자가 여성이 “매정하게 딱 잘라서”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을 그대로 내보냈다. 피해자 여성에 대해 매정하다는 표현을 쓴 수사관도 문제지만, 이 내용이 비교적 짧은 방송 뉴스 내에 내보내야 할 만큼 사건의 중요 사항이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말하기 방식이 문제 되는 것은 단지 가해자 목소리를 전달했기 때문이 아니다. 원론적으로 사건에서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진술할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을 보도하면서 언론들이 “안 만나줘서”, “이별 통보 후 홧김에”, “왜 교제 거절해” 등 가해자의 이유를 제목으로 인용 보도하는 것이 문제이다. 여성이 교제를 거절하는 것은 피해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기존 연구에 따르면 가부장제 인식하에서 사람들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화나게 하여 폭력이 발생한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면 오히려 폭력에 너그러워지면서 책임을 피해자에게로 돌리는 경향이 생긴다고 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말을 인용하고 이를 사건의 동기로 서술해주는 것은 여성이 남성을 화가 나게 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폭력이 발생했다는 잘못된 인과 관계를 구축하여, 결국 그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는 인식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
위와 같은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여성을 의사결정권과 자유가 있는 동등한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고 소유가능한 존재로 바라보는 데 있다. “안전이별”이 청년 여성들 가운데 주요 키워드가 될 정도로 데이트 폭력 문제에 대한 체감적 두려움이 여성들 사이에 존재한다. 남성들이 친밀한 관계에서의 집착과 통제를 당연시하고, 여성을 자신의 말을 따라야 하는 소유물처럼 여기는 인식이 존재하기에, 이별의 통보나 교제 신청의 거절에 폭력을 행사하고 나서 여성의 말이 폭력의 원인이 된 우발적 사고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의 화가 폭력의 정당화 요인이 될 수는 절대 없다. 언론이 이러한 진술을 사회에 그대로 유통시키는 것은 문제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화하는 행위이다.
우리 언론은 가해자와 범죄자의 말을 강조하여 직접 인용해주면서, 피해자의 행위를 묘사하는 데 있어 가해자의 감정적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다. 형식적인 객관주의의 틀을 빌려 선정적인 보도를 할 뿐이고, 보도하는 내용이 구성할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한 것이다. 인용이 필요하다면 인용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용 그 자체가 아니라, 객관주의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사건의 의미에 대한 전달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실질적 내용이다. 언론사 먼저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과 같은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가부장제적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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