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조국 사태와 언론 개혁

조국은 이제 한 장관 후보자의 이름이 아니다. 최순실이 그랬듯이, 사태와 정국을 수식하는 관형어가 됐다. 후보자를 둘러싼 공격과 방어, 비난과 옹호, 기대와 절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모두 내릴 수 없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형국이다. 


이른바 ‘조국 정국’은 우리 현실이 얼마나 누추한지 드러냈다. 촛불 이후의 정부란 혁명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제도개선도 힘에 부쳐 하는 허약한 정권이란 걸 보여줬다. 우리가 자랑하는 자유와 민주의 제도들이 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인지도 폭로했다. 눈앞의 정쟁도 걱정이지만, 교육, 검찰, 그리고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개혁이란 말보다 더 낡은 말이 없다. 언론 쪽이 특히 그렇다. 철마다 개편이 이루어지고, 정권마다 개혁안이 나온다. 그래도 진정한 개혁은 없다. 


언론개혁이 어려운 이유가 있다. 언론은 자유를 제도화한 것이다. 정부를 감시하고, 권력을 비판하고, 압제에 저항하는 시민의 자유를 제도화한 것이 언론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 자유의 제도를 멈출 수 없고, 뒤집을 수도 없다. 비유컨대 언론개혁이란 이미 뱃길을 떠난 여객선을 뜯어고쳐 완전히 새로운 배로 만들자는 일과 같다. 항로 중에 배를 때려 부술 수는 없다. 하나씩 뜯어내 교체하면서 가야 한다. 


따라서 언론개혁을 무슨 정부의 부처조정이나 기업의 구조조정처럼 이해하면 곤란하다. 애초에 조정할 만한 구조가 없이 부유하는 실천적 관행만으로 존재하는 제도가 언론이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개혁을 정치적 숙정작업이나 경제적 경제개발 프로그램처럼 생각해서는 절대 안된다. 압제와 계도로 자유를 만들어 육성할 수 있는 방도란 없다. 


결국 언론인 스스로 자신을 개혁하는 수밖에 없는데, 우리 사회에서 언론개혁이 어려운 진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고 무시하는 언론인이 너무 많다. 


나는 언론사 수익이 줄어서 걱정이라는 언론인은 많이 봤다. 그러나 언론불신이 심각하다는 조사결과를 놓고 걱정하며 자책하는 언론인을 본 적은 별로 없다. 다른 언론사를 흉보고, 새로운 매체를 멸시하는 기자는 많다. 그러면서 자신의 과실은 관행이고, 여건이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변명한다. 서로 언론도 아니라고 비방하는 사이에, 모두가 입에 담기 민망한 멸칭으로 불리고 있다. 그사이 배가 가라앉고 있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재확인한 언론개혁의 요점을 한 가지 강조해서 말하고 싶다. 우리 언론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권력비판에 특별히 취약하다. 여기에서 취약하다 함은 권력비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최순실 보도에서도 확인했듯이 우리 언론은 때에 따라 못 말리는 사냥개처럼 물어뜯는다. 


내가 말하는 취약성이란 권력비판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 방법이 부실하고, 양식은 허접하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 도식적 관행을 따르고, 관행을 따른 사실적 근거가 곧 기사라는 듯이 글을 쓴다. 도식적인 관행이란 관련자나 전문가에게 육성이나 문서로 확인을 받는 방식 같은 것을 지칭한다. 이렇게 확인한 내용이 기사 전체가 되는 것이 관행적 글쓰기에 속한다. 


그 결과,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는 배경과 맥락을 검토해서 그 사건이 발생한 이유를 찾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맥락과 줄거리가 없는 사실명제 하나가 곧 하나의 완성된 기사가 된다. ‘딸이 몇 등급이다’ ‘직인을 찍은 적 없다’ ‘논문이 취소됐다’ 등이 곧 기사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전부다. 이런 기사는 단편적으로 보인다. 사건에 대한 보고를 듣고 싶거나, 배경과 함의를 알고 싶은 뉴스 이용자에게는 결국 설명이 부족하다. 


사건이란 하나의 줄거리이고, 줄거리가 없으면 사건 주인공의 행동을 평가하기 어렵다. 권력비판이라는 엄중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권력자의 행동을 평가하기 어려운 단편적인 사실만 늘어놓고 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 언론은 권력비판에서 항상 부족한 상태에 머무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무시한다면, 무능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다고 의심받게 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