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한때 20%는 우습게 넘기던 예능의 시청률들은 10%만 넘어도 대박으로 축하받지만 이마저도 흔치 않습니다.
최근 1000만뷰에 육박하는 조회수로 장안의 화제인 유튜브 속 예능 프로그램 <워크맨>을 제작한 곳이 방송사인 것은 아시는지요? JTBC 내에서 디지털을 기반으로 제작하는 일을 맡은 스튜디오 룰루랄라가 박준형의 <와썹맨>을 2018년 2월 시작하며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여가다 올해 시작한 <워크맨>을 불과 수개월 만에 성공시켜 우연이 아닌 실력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스튜디오 내에서 일정한 팬이 생기자 채널을 분리하여 각 20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한 <와썹맨>과 <워크맨>은 매주 배달되는 잡지를 정기적으로 배송하는 것처럼 깊은 유대를 형성합니다. 방송사가 만들어낸 방송이 아닌 콘텐츠임을 “이 프로그램은 직접 광고를 포함하고 싶습니다”라는 <와썹맨>의 첫번째 에피소드 속 자막으로 포부를 열며 선언합니다. 이에 부응하듯 <워크맨>은 각 회사로부터 직장체험형 PPL 광고들을 수주하며 상업적 성공까지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방송인 장성규. 경향신문 DB
다양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직업을 체험하는 <워크맨>의 주인공 장성규는 힘든 일을 하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저세상 드립’으로 유명해진 그의 선을 넘는 표현은 “선넘규”라는 애칭을 그에게 선사했습니다. 이는 이 시대의 금기와 체면치레에 대한 조소이자 해소의 카타르시스로 다가옵니다.
TV 오디션 프로그램들에서 주목받은 출연자가 부적절한 언행이 남겨진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의 흔적으로 인해 채 뜨기도 전에 지는 광경을 목도한 Z세대는 모든 것이 기록되고 보존되는 투명사회에서 일상의 표현에 조심해야 함을 이미 체득하였습니다. 스스로의 표현을 늘 검열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에 긴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선을 넘는 아슬아슬한 드립을 무수히 발산하는 주인공은 대리만족의 쾌감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마다 멘토로 출연하는 따듯한 선배들이 업무의 익숙함을 자랑하고 지도해 주는 모습에서 지금 청춘들의 싱그러움을 보게 되지만, 마지막 임금 정산의 장면에 이르면 최저시급에 머무르는 임금을 보며 다시금 현실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저렇듯 똑똑하고 성실한 청춘들이 최소한의 보상만으로 밥 한끼 편하게 먹기 힘든 근무 환경에서도 밝게 일하는 모습이 매회 보여질 때, 시청자이지만 출연자와 같은 경험을 한 수백만의 청춘들은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댓글로 공감을 표현합니다.
세 자릿수 억 단위에 육박하는 적자로 고민하던 공영방송은 경영 효율화를 위해 자구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시청률도 예전 같지 않아 많은 예산이 드는 월화드라마의 제작을 멈추었다는 소식은 흉년이 들자 씨감자까지 먹어치우는 대기근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합니다.
<워크맨>의 성공은 뉴미디어 시대에 전통적 미디어의 최강자인 방송사가 반격을 시작한 것과 같습니다. 다만 그 채널이 더 이상 전파의 힘을 빌리거나 편성의 기획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 방송’이 아닙니다. 또 때로는 적절한 비속어와 브랜드의 언급을 포함한 ‘비방용 언어’와 예전의 ‘초등학교 5학년’도 이해해야 한다는 ‘계몽적 사고’와는 다른 문법의 콘텐츠로 무장한 반격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방송분량을 걱정하며 한 장면을 느리게 3번 반복해서 보여주는 기존 방송국의 문법과 관습을 벗지 못하면 3초마다 컷이 바뀌는 유튜브 속 콘텐츠에 익숙해진 속도 빠른 시청자의 눈을 되찾아오긴 어려울 듯합니다.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즈>의 유머와 같이 던지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밀도 높은 콘텐츠만이 시간도 없고 생각도 빠른 21세기의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 수용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보는 이들의 지능과 감각을 충분히 믿고, 빽빽히 채워진 콘텐츠를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낸다면 열린 플랫폼 유튜브에서 좋은 콘텐츠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눈과 마음을 열어준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세번째 다시 보기로 <워크맨> ‘에버랜드 2탄’을 함께한 추석연휴가 즐거웠습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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