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민주주의는 많은 희생을 딛고 세워진 제도다. 그 희생을 되돌아보는 것조차 매우 힘든 일이다. 너무나도 비참하고 안타까운 희생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구체제 세력의 저항으로 발생한 피 흘림이다. 민주주의는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정착하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지키는 것도 참 힘들어 보인다. 구체제 세력만이 아니라 지금도 다양한 기득권 집단은 민주주의를 불편해하고 역으로 붕괴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아직도 쟁투 중이다.
그런 반민주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의 한 축은 언론이다. 시민혁명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구호가 동시에 터져 나온 것은 필연적이다. 시민이 주권자인 정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민이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이 진실에 다가서야 하고, 언론은 시민을 대신하여 진실을 확인하고 전파하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고, 기존 언론을 대신하는 다양한 소통 경로가 생겼지만 여전히 주요한 대부분의 정보는 언론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언론의 진실 보도는 매우 중요하다. 사실과 진실 보도를 부정하는 언론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진실 보도를 막는 덫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은폐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다양한 취재원들과 진실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미처 진실을 확인하기 전이라도 단독, 특종을 놓칠 수 없다는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 수많은 언론이 경쟁하는 치열한 현장에서 주어지는 살인적인 기사 생산의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도 진실은 중요하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기사를 내보내기 전 진실 확인 과정을 거치리라 믿는다. 사실과 진실 보도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언론은 논의할 가치도 없다. 관건은 나름 진실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을 때 언론이 하는 선택에 있다. 기사를 내보내지 않을 수 있는가? 다른 언론들이 기사를 내보내는 것에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가?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온 나라가 ‘조국홍역’을 앓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내세운 후보자이니 검증은 중요하고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의혹 제기가 있으면 보도해야 한다. 물론 언론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없을 때 보도를 삼가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장관 후보자와 관련된 의혹 제기니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치자. 그러면 이후 진실을 밝히려는 추가 취재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폭로한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의 추가 심층 취재는 보기 힘들었다.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의혹에 의혹, 주장에 주장이 덧붙었을 뿐이다.
기사가 100만건이 넘었다느니, 7만여건밖에 안된다느니 하는 것도 논란거리였다. 하지만 이번 조국 관련 보도의 핵심적인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적인 것이었다. 기사 가치가 있거나 깊이가 있는 기사라면 그게 조국에게 불리하든, 유리하든 양이 많다고 문제가 되겠는가. 그게 언론의 사명인데.
언론은 의혹을 제기하면 ‘반조국’, 의혹을 해명하면 ‘친조국’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정치적 진영 논리의 질곡에서 벗어나야 한다. ‘친조국’이 정의가 아닌 것처럼 ‘반조국’도 정의가 아니다. 진실만이 정의일 뿐이다. 예를 들어 속보 압박에 쫓겨 의혹 제기를 했더라도 그것을 부정하는 주장이나 근거가 나타나면, 우리 언론이 이를 정식으로 기사화하거나 이전 기사를 수정할 기개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역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오보를 할 수 있지만 오보를 스스로 정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 있다. 우리 언론이, 언론인들이 나라를,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거창한 사명감을 품어보면 어떨까.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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