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국정농단 주역과 부역자들을 처벌하라고 주말 촛불집회를 연 것이 벌써 14번이다. 그 세월이 100일이다. 그동안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다. 그리고 특검과 헌재가 정의를 세우고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은 혁명적인 촛불의 힘 덕택일 터이다. 사실 직간접적으로 국정농단을 방조했던 다수의 언론들이 앞다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한 것도 촛불의 힘에 기인한 바가 크다.
하지만 광장의 시민들은 이미 사회개혁을 요구하며 진화하고 있는데 언론이 이런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재의 심리를 방해하고, 일말의 탄핵 기각 가능성을 열기 위해 수를 쓰는 상황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 같은 주요 문제를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이러니 아직도 광장에서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구호가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단순히 대통령을 갈자는 게 시민의 요구는 아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내건 6대 긴급현안인 세월호 진상규명, 백남기 특검 실시, 언론장악 방지법 개정, 성과퇴출제 폐지, 사드 배치 저지, 한국사 국정교과서 금지 등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이 야기한 중요한 폐단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 탄핵과 더불어 반드시 해소해야 할 현실 과제들이다. 그렇지만 세월호 진상규명이나 언론장악 방지법안 처리 논의는 하세월이다. 세월호 특검은 언급조차 안되고 있으며 성과연봉제, 사드 배치, 한국사 국정교과서 등은 광장의 민심에 역행하여 ‘징검다리’ 정부가 외려 이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도 언론은 촛불민심을 진보·보수 진영이 대립하는 요구 정도로 다루거나 아예 촛불집회와 맞불집회 중계 수준으로 전락시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또 대통령 선거가 가시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잠재적 대통령 후보의 행보나 다루고 있고, 대선 보도에서 그리 경계하는 경마저널리즘식 지지율 보도와 분석에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언론에 따라서는 광장이 요구하는 개혁 의제들에 동의하는 정도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의 여부와 이런 과제들의 중요성은 별개의 차원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없이 시민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로 진보할 수 있을까. 언론의 정상화 없는 민주사회가 가능할까. 서구사회가 이미 포기하기 시작하는 성과연봉제의 뒤늦은 도입은 대부분이 노동자인 우리의 삶을 또 얼마나 파괴할까.
사드 배치로 고조될 한반도 군사안보의 긴장과 경제적 타격은 또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한국사 국정교과서로 후퇴하는 민주주의와 인식의 퇴보는 또 누가 책임질 것인가. 언론이 무관심하게 넘길 사안은 아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관련 사안이 터질 때마다 일회성 사건 보도 정도로 지나가고 있다.
3000명 이상이 참여한 ‘교수연구자비상시국선언’의 뜻을 이은 ‘교수연구자비상시국회의’가 민주·평등·공공성의 가치를 내걸고 지난 1월19~20일 토론회를 열어 새 민주공화국 제안의 초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기사로 보도한 언론은 많지 않았다.
8개 분야 26개 주제(물론 이것으로 사회개혁의 전 분야를 다룰 수는 없지만)로 현실을 점검하고 개혁의 대안들을 다뤄 본 것이다. 따라서 지금 각 분야에서 가장 첨예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나 대립 지점을 짚었다. 촛불민심이 대통령이나 바꾸자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생각한다면 당연히 언론이 다뤄야 할 주요한 기사거리였지만 언론의 태도는 그렇지 못했다. 아니 교수연구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도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있지만 언론이 이를 제대로 전달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비록 희대의 국정농단을 경험한 우리 사회라서 일말의 우려가 없지는 않지만,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헌재 평결 결과 인용될 것으로 예측한다. 그렇다면 곧 대통령 선거다. 흔히 대통령 선거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올바른 후보자 선택을 돕기 위해 인물 검증과 정책 검증이라고 한다. 그런데 언론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책을 검증할까?
후보들이 내세우는 장밋빛 공약의 실현 가능성 여부라도 확인하면 다행이다. 그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이 정말 시민들이 원하는, 시민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공약인지를 따져보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후보들 사이의 공방이나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서구사회에서 보수 정당이 내세우는 정도의 공약이 진보·보수 논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언론은 이를 중계만 할지도 모른다. 왜냐면? 검증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 검증의 기준은 ‘유권자가 원하는 것’이다.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선거보도에서 유권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유권자 의제가 부각된 적은 거의 없다. 촛불혁명이 진행되는 지금이라도 언론은 유권자들이 요구하는 사회개혁 의제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정책을 검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국정농단의 직간접 부역자가 되지 않으려면….
김서중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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