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디지털 성폭력 근절 운동 단체인 ‘디지털 성범죄 아웃(DSO)’은 기자들이 사용하는 단체채팅방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2차 가해와 불법행위를 폭로하고 이에 대한 엄중한 대처를 촉구했다. 기자들은 디지털 성폭력 관련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일삼았고, 해당 사건에서 확보한 불법촬영 동영상 및 이미지를 서로 요청하고 공유하는 일까지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언론 및 시민단체와 학계의 문제 제기에 경찰 측은 내사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문제의 기자들을 밝혀내고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질이 부족한 일부 언론인, 일부 언론 등으로 갈라내고 차별화하기에는 우리 언론의 전반적인 환경과 문화에서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을 드러내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18년 미투 운동과 관련한 보도들에서 성차별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보도 태도가 문제점으로 지적된 바 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양산하는 보도, 받아쓰기식 제목 보도 및 성폭력 범죄를 선정적 가십거리로 전환하는 보도 등이 그것이다. 이번에 폭로된 기자 단톡방에서도 미투 운동의 생존자들을 2차 가해하는 표현들이 오고 갔다는 사실 역시 알려졌다. 우리 언론이 보여주는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개별 언론인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만이 아니라 뉴스 생산 문화 그 자체에 만연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증한 것이다.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뉴스 생산 조직의 기사 작성 관행의 변화는 단순한 인식 전환 촉구만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미디어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했고 인권에 대한 사회적 요구 수준 역시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언론사들의 목적의식적인 변화 노력이 필요하다. 여전히 우리 언론의 기자 양성 체계는 도제식에 가깝고, 보도 윤리와 인권 주제를 고민하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조직 문화의 변화 없이 성평등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공동체 문화를 구성하기 어렵다.
사실 이번 기자 단톡방 사건은 기자의 직업윤리, 즉 정보 취득 경로의 정당성 확보, 취재 중 취득한 정보를 보도에만 사용한다는 원칙, 보도 대상의 사생활 보호가 중요하다는 인식만 갖췄더라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원칙이 특히 성폭력과 관련된 보도에서 쉽게 무너지고 있다면, 이는 언론사 조직 문화에서 성평등과 관련한 명확한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언론 문화에서 사건 관련 정보 획득과 공유 활동의 남성 중심성, 즉 술자리나 사우나 등의 고유한 남성 연대 유지 기제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이를 권력으로 활용해 온 역사가 너무나 길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정보 공유 방식과 남성문화의 구성 방식이 새롭게 연결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단톡방은 모두가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폐쇄적 네트워크이자, 서열성을 확인하는 남성문화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를 폐쇄하거나 접속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보 공유를 용이하게 만드는 디지털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성차별적 인식에 문제의 근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차적으로 이번 사안에 대한 처벌과 징계 문제가 언론사 차원에서 명확히 처리될 필요가 있다. 징계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미 2017년에도 기자 단톡방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도 달라진 바가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아직 우리 사회는 디지털 미디어가 변화시킨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지 않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버닝썬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대중들 역시 사건 관련 동영상을 공유하거나 공유를 요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언론이 직업상의 특권을 비윤리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해당 공동체 내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은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은 현 상황을 강화시키기에 충분한 일이다. 언론 내부에서부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획기적인 변화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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