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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어둠과 눈물과 혁명의 미디어

무릇 미디어는 단순한 전달도구가 아니다. 마셜 맥루언이 간파했듯이 ‘인간의 확장’이다. 가령 바퀴는 발의 확장이고 옷은 살갗의 연장이다. 굳이 맥루언의 정의를 따르지 않아도 우리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시청각을 확장하고 있다. 옷과 바퀴들이 맥루언의 미디어라면, 21세기 새로 떠오르는 미디어는 촛불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울여울 타오른 그 미디어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리라 나는 확신한다. 새로운 미디어 촛불은 우리 내면에 숨 쉬는 영혼의 확장이다.

 

무엇보다 촛불은 어둠의 미디어다. 우리 삶을 에워싼 어둠을 새록새록 밝힌다. 2016년 가을, 광장에서 타오른 촛불은 대통령 박근혜의 어둠을 밝혔다. 그 어둠의 장막은 다름 아닌 신문과 방송이 펼쳐왔다. 조선·중앙·동아일보와 KBS·MBC·SBS는 박근혜를 노상 ‘신뢰의 정치인’으로 찬양해왔다. 심지어 ‘서민’ 이미지까지 덧칠했다. 쿠데타를 저지르기 전에는 육영재단도, 정수장학회도, 영남대 재단도 없었던 박정희를 ‘청빈의 상징’으로 한껏 치켜세웠다. 아직도 적잖은 이들이 박정희를 ‘논두렁에서 막걸리를 마신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고급 양주·여색을 즐긴 박정희와 미디어에 나타난 ‘각하’의 차이가 빚어낸 집단착각이다. 박근혜가 만든 미르재단 따위는 바로 아비를 그대로 본뜬 탐욕이다. 언제나 권력에 용춤을 춘 3대 신문과 3대 방송이 펼친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그래서 아름답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민중총궐기 본부 주최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촛불은 눈물의 미디어다.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하러 경기도에서 버스를 탔다. 평소 빈자리가 많을 시각에 광역버스는 초만원이었다. 곧장 눈시울이 뜨거워왔다. 대구여고생이 ‘대구 시민 여러분’에게 호소하는 동영상을 보았을 때도 울컥했다.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가득 찬 민중 앞에선 울먹거렸다. 돌아갈 때는 지하철을 탔다. 그 안에서 ‘건전지 촛불’을 든 두 어린 형제를 보았을 때 가까스로 눈물을 삼켰다. 왜인가? 누가 저 100만이 넘는 남녀노소를 광장에 불렀는가. 한 사람 한 사람 촛불을 든 얼굴에서 곰비임비 삶의 고통과 슬픔을 읽었다. 일찍이 춘향전의 이몽룡이 떨어지는 촛농에서 민중의 눈물을 읽지 않았던가.

 

촛불은 혁명의 미디어다. 이몽룡은 탐관의 잔칫상 촛농에서 백성의 눈물을 읽고 그 일당을 모조리 엄벌했다. 춘향전이 왕조체제에서 창작된 작품임을 감안하면, 우리는 박근혜의 호화오찬을 어찌 해야 옳을까. 대기업 회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혈세로 먹고 즐긴 박근혜의 ‘진실’은 알면 알수록 분노를 자아낸다. 당시 박근혜가 대기업 회장들과의 오찬 외에도 각각 ‘독대’해 만난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상 그녀가 만든 재단에 대기업들은 수백억원을 갖다 바쳤다. 한 손에는 검찰수사의 칼날을 쥔 상태였다. 그 시기 그녀는 ‘노동개혁’을 언죽번죽 부르대며 대기업들의 오랜 숙원인 ‘일반해고’를 가능케 하려고 안달이었다. 언제 ‘정리해고’당할지 모를 정규직 노동자들을 기득권세력으로 살천스레 몰아세운 ‘사냥’도 그 시절이었다.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아직도 그녀를 지지하는 5퍼센트의 동시대인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그 따위 작태를 저지른 인간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촛불은 그 어둠에 갇혀 고통받아온 민중의 꿈을 담고 있다. 혁명의 미디어다.

 

어둠·눈물·혁명의 미디어인 촛불이 수도 도심을 가득 채울 만큼 타올랐는데도 정치의 앞날은 잔뜩 흐림이다. 아직도 박근혜의 퇴진은 ‘국정공백’이니 ‘헌정중단’이니 떠들어대는 미디어들이 있어서다. 그들에게 분명히 짚고 싶다. 문제가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그친 사안이라면, 대통령 퇴진 요구는 성급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 수석 안종범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는 증언으로 국면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박근혜 게이트로 이미 바뀌었다. 다음 정부를 세우는 방법도 우리 헌법에 친절하게 명문화되어 있다. 헌정 중단을 들먹이려면 지금이라도 ‘박정희 찬가’부터 접을 일이다.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더 머물러 있겠다는 아집, 바로 그것이 국정공백이다.

 

박근혜를 신뢰의 정치인 따위로 포장해온 언론계는 물론 정계와 학계의 명망가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민중을 기만한 그 죄, 씻을 마지막 기회가 있다. 지금 당장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을 들라. 조금이라도 인간적 성찰이 있다면 청와대와 내각, 새누리당의 모든 고위직들도 박근혜에게 직언을 해야 옳다. 3대 신문과 3대 방송의 언론귀족들, 그들과 손잡아 온 귀족교수들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박근혜 퇴진 이후를 걱정하지 마라. 민생은 뒷전이고 제 잇속만 챙겨온 부라퀴들에게 아무도 그따위 과분한 권리를 주지 않았다. 이미 드러났듯이 촛불을 든 민중이 3대 신문과 3대 방송의 언론귀족이나 귀족교수들보다 현실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모름지기 타오르는 촛불 앞에 겸손할 일이다. 새로운 미디어 촛불은 가슴의 확장이다.

 

손석춘 |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