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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언론의 역할과 올바른 의제 설정

백남기 농민의 사인과 부검 여부로 논란이 한창이다. 애초 논란이 될 사안이 아니지만 경찰이나 일부 언론은 이를 부추기고 있다. 사인과 부검의 필요성을 다툴 여지가 없음은 명백하다. 백선하 교수가 전문가로서 소신을 가지고 했는지, 어떤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서울대 의대 재학생들을 시작으로 동문, 일반 의사들 그리고 의사협회까지 외인사로 표기해야 했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런데도 여전히 백선하 교수의 주장을 읊어 전달하는 일부 언론은 과연 제대로 된 언론일까? 하물며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외상성 경막하출혈을 상병코드로 하여 보험급여를 청구했다고 한다. 더 논란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검 역시 마찬가지다. 부검이 필요한 이유는 민형사 사건에서 사인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인데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그런 경우인가? 그런데도 부검영장을 신청하고, 기각되니 또 신청한 경찰은 조직 전체를 걸고 법원을 압박(겁박)한 것이다. 법원의 조건부 영장을 묘수로 보든, 악수로 보든 경찰의 압박을 피하기 위한 법원의 기이한 대응이었음은 명백하다. 경찰은 영장 만료일인 10월25일을 앞두고 정당한(?) 영장 집행과 이것을 거부하는 가족을 부각시킬 것이고, 언론은 집행의 정당성 여부로 지면과 시간을 채울지도 모르겠다.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월 29일 공개한 광주 11호 살수차 CCTV 영상. 백남기 농민이 물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 담겼다. ㅣ박남춘 의원실 제공

 

애초 부당한 권력의 편을 드는 언론의 행태는 논할 가치도 없다. 그런데 경찰과 권력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언론들은 제 구실을 다하는 것일까?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쟁점이 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부조리하다. 권력은 그런 상황을 즐기고 있고 일부러 조장했을 수도 있다. 정부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계기로 지난해 백남기 농민이 위험을 무릅쓰고 민중총궐기 집회 현장에 나와야 했던 동기가 다시 부각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약자들이 집회에 나오는 것은 집회 이외의 방법으로 그들의 삶을 호소할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언론이 그들의 언로 구실을 제대로 했더라면 약자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왔을까?

 

지난해 민중총궐기는 백남기 농민을 집회 현장으로 불러들인 정부의 농정 실패를 비롯하여 총 11개의 과제를 제시했다.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하면서 식사용 쌀을 또 수입하겠다는 정책, 쉬운 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정책, 청년 일자리 기금으로 기업들만 배불리는 정책을 반대하고 역사 왜곡하는 교과서 국정화 중단, 생태환경을 위협하는 노후원전 폐기와 신규 원전 건설 금지, 사회 공공성을 파괴하는 의료·철도·가스·물 민영화 중단,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방해 중단·진상규명 보장 요구 등등이었다.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 언론은 이런 주요 의제들을 어떻게 보도해왔을까? 또 시민들은 이런 사안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부분은 잊었을 것이다. 그새 노동정책은 정부가 원하는 대로 관련법을 개악했고 이제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미국 정부가 수십년에 걸쳐서 논란을 벌이다 포기한 정책임을 대부분의 시민들은 모를 것이다. 언론이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지진으로 자연이 경고하기 전에 원전이 심각한 사회 재앙일 수 있음을 알린 언론 또한 거의 없다. 언론에는 원전마피아의 영향이 없었을까? 대통령이 진상규명국장조차 임명하지 않을 정도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방해했고, 드디어는 자의적 법 해석으로 위원회를 강제 종료시켰음을 아는 시민들도 분명 거의 없을 것이다. 역사 교사들이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제대로 검토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주문 압박을 받아야 하는 현실은….

 

평소는 그렇다 치고, 되돌아가 생각해보자.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아 사경을 헤매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당시 언론들이 민중총궐기의 의제들을 충실히 다뤘을까? 최근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는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공공기관들이 왜 반대하는지, 시민들은 어떤 지점에 주목해야 하는지 심층보도를 하는 언론들이 거의 없는 점에 비추어 보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파업임에도 교통에 큰 혼란이 없다고 보도하는 양만큼이라도 성과연봉제 도입이 지하철의 위험을 증대시키고, 환자의 안전보다 수입이 더 중요하고, 금융투자의 안전성보다 은행의 수입 증대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노동자들의 주장을 전달했는지 의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안의 본질에 천착하는 보도를 찾기는 힘들다.

 

올해도 민중총궐기가 11월12일로 예정돼 있다. 교통이 막힐 테니 조심하라는 보도부터 참가인원, 경찰 충돌 여부 등을 보도하겠지만 예전의 예로 비춰 참가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전달하는 보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언론의 존재이유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올바른 의제설정과 공론장 제공은 언론의 기본적인 존재이유이다.

 

김서중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