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기자들의 기개는 어디로 갔을까?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 언론계는 ‘취재 지원 선진화 시스템 방안’으로 시끄러웠다. 정부는 취재 지원의 효율을 높이고 적극적인 정보 제공을 지향한다고 설명했지만, 언론계는 기자실 통폐합이 기자들의 취재를 제한하는 방안이라며 비판했다. 그 방안의 찬반을 지금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당시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대응했던 기자들의 ‘기개’가 돋보였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할 뿐이다. 여하튼 기자실은 통폐합됐고, 당시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대못을 뽑겠다고 공언했다.

 

그렇게 취재의 자유를 강조한 이명박 정부 시절 현실은 어땠을까? 이명박 정부 시절은 엠바고(보도유예), 오프더레코드(비보도)의 시기라 해도 무방하다. 엠바고와 비보도는 내용을 알려 주기 전에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에 대해 사후에 엠바고와 비보도를 요청하는 일들도 벌어졌다. 국익을 위해 오히려 알려야 할 사안을 엠바고로 가리려 했다. 청와대는 전시작전권 연기 협상 예정임을 알려 주고 엠바고를 요청했다. 협상이 진행될 때까지 공론화되는 것을 피하자는 의도였으리라.

 

문제는 청와대 출입기자들! 엠바고와 비보도 남발에 항의는커녕 남발되는 엠바고나 비보도에 도전하는 기자들을 알아서 징계했다. 기자회견도 형식적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 취임 3주년 기자회견은 등산대회를 겸한 기자간담회로 대체하고, 질문도 세 개로 한정했다. 취임 3주년을 맞이한 국민들은 정말 궁금한 것이 많았을 텐데 기자들은 궁금한 게 없었을까?

 

그럴 리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기자회견 수는 현격히 줄었고 기자회견 내용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자료를 들이대며 장시간에 걸쳐 압박하듯이 일문일답하던 기자회견 분위기는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상태가 더 심각해졌다. 기자회견은 더욱 줄고 기자회견은 일방적이 되고 말았다.

 

2014년 당시 기자들의 (약정)질문에 따라 이미 준비된 답변을 프롬프트로 읽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비판을 받았던 대통령 기자회견은 2015년에는 프롬프트도 없애고 자유질의 응답으로 진행될 것이라 했다. 그런데 ‘시간도 없고 하니 마지막 질문 받겠다’는 발언에 질문을 신청한 기자는 ‘예정’된 질의자였다. 연출인 것이다.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무엇을 질문해야 할까? 대통령이 표심을 얻었던 공약의 이행 여부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질의사항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중요 공약이었던, 그리고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경제민주화나 복지 관련 내용은 대통령의 발언에도 기자들의 질문에도 없었다.  2007년 그렇게 국민의 알권리를 강조했던 기자들의 기개는 어디로 갔을까?

 

최근 우리나라는 연일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민심의 분출로 뜨겁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또는 헌정파괴 때문이다. 물론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라 얘기하지만 최순실은 농단의 본질이 아니라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다. 그래도 그 실마리가 드러났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하지만 경악스러운 국정농단 실태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떠오르는 서글픔이 있다.

 

국회에서 이미 문제가 제기됐던 정유라 부정입학 문제, 정윤회 관련 문건 유출 문제 그리고 박관천 경정의 권력 서열 발언 등등 국정농단을 취재하고 밝힐 수 있는 실마리들은 이미 주어졌었다. 언론은 이런 실마리가 있는데 취재했을까 안 했을까. 누군가가 취재를 막았을까. 아니면 기사의 가치를 몰랐을까. 취재했다면 왜 보도하지 않았을까. 어떤 가능성도 정상적이지 않다. 그리고 언론의 감시 기능이 사라진 진공의 상태에서 국정농단은 독버섯처럼 창궐했다.

 

사실 지금은 최순실과 그 주변에만 주목하고 있지만 혹 다른 분야에서 또 다른 국정농단이 있을 수 있고,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거대한 흐름이 있을 수 있다. 언론의 감시·견제는 2014년 유병언 관련 보도를 연상케 하는 신변잡기 보도에 머물러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좀 더 구조적 본질에 다가가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국정농단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은 일방 사과로 이 난국을 모면하려 했고 언론은 조력했다. 10월25일 1분30초짜리 사과 아닌 사과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하야 요구가 거센 11월4일 대통령은 다시 9분에 걸친 기자회견을 했다. 사과도 했지만 여전히 국익을 위한 선의로 진행하는 과정에 ‘꼬리’의 잘못으로 저질러진 사건이라고 변명하고 국가위기 상황에서 단합하고 협조하자는 주문을 할 뿐이었다.

 

문제는 이 두 번의 기자회견이 질의응답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양해했다는 점이다. 이 엄중한 시국에서도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대통령, 그리고 이를 양해한 ‘국민의 알권리를 강조하는’ 기자들! 기자들의 기개는 어디로 갔을까?

 

김서중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