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간 디지털 미디어 세계에서는 성차별과 관련하여 많은 일이 일어났다. 단체카톡방에서 남성 기자들이 동료 여성 기자에게 성적 괴롭힘에 해당하는 표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 것이 알려졌다. 남자아이들이 더 많이 운동장을 이용하고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에 나오려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진 한 초등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는 지금까지도 악성 댓글이 달리는 중이다. 그리고 개인방송을 하는 여성 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BJ)를 살해하겠다고 그 여성 BJ의 집을 찾아다니는 과정을 방송한 한 남성 BJ는 5만원의 범칙금을 부과받아 논란이 되었다. 명백한 살해 위협 표현이 있고, 특정 주소지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처럼 경미한 처벌은 문제가 있다고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경찰은 대상 여성의 실제 주소지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어서 실질적 위협이 아니었고, 그저 남성 BJ가 방송 흥행을 위해 과장한 것이라 보고 5만원의 범칙금 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 남성 BJ는 본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면서 분노하는 영상을 올렸고, 관련 보도를 한 신문의 웹페이지마다 여성 BJ가 심각한 욕설을 하고 남성을 모욕해 온 문제가 있기 때문인데 이 점을 빼고 편파 보도를 하고 있으며, 이 모든 문제는 페미니스트 때문이라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언론은 발 빠르게 이 사건은 문제 있는 사람들 간 발생한 일탈행동으로 프레이밍(틀짜기)하기도 했다. 여성 BJ나 남성 BJ나 모두 문제이니 이들을 쫓아내면 사회의 안전이 다시 확보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특정 ‘비정상인’의 행위를 원인으로 치부하고 이들을 몰아내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사건의 관련자들이 ‘비정상적 범죄자’인 것도 아니다. 기자들은 소위 언론고시를 통과한 고학력자들이고, 이제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문제가 된 남성 BJ의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80만명이나 되며, 위의 사건이 알려진 후 여성 BJ를 비난하고 모욕하는 영상을 직접 제작하여 올린 개인방송 BJ는 19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에는 청소년들도 10여명 포함되어 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이 디지털 미디어 세계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인식을 공유하면서 차별과 적대의 말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감각을 수년간 키워왔다. 이는 절대적으로 교육의 실패이다. 차별에 반대하고 서로의 존엄을 지켜줄 수 있는 합리적 시민을 키워내지 못한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 반면, 디지털 미디어를 갖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왜 차별이 문제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논의를 해본 적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논의가 중요한 것은 이 논의 결과가 차별과 적대에 대한 행정적 규제의 철학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경우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며 인터넷 영역에 대해서는 최소 규제를 하려 한다. 그런데 그 최소 규제 범위에 아직까지 차별 금지가 없다. 이는 차별금지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디지털 미디어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고 규제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우리가 왜 규제해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이에 대해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인터뷰를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의 신상은 쉽게 각종 커뮤니티, 페이스북 등에서 공유된다. 위의 여성 BJ 사례에서도 그 여성이 아닌 다른 여성의 실명과 연락처가 공유되어 피해를 입고 있다. 이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가? 이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말은 단지 말이 아니라 상처를 남기며 고통을 준다.
그리고 그 고통 때문에 공론장에서 발화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신상 공개와 결합될 경우 여성이 경험하는 공포는 더욱 커지고 결국 그 효과는 차별에 대한 발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중요한 것은 규제의 근거를 만드는 일이다. 디지털 미디어 세계에서 무엇을 하면 안 되는가 하는 최소한의 기준 말이다. 그리고 이건 기계적 평등이나 통합의 논리로 세울 수 있는 기준이 아니다. 초월적인 법이 존재하고 그 법에서 기준을 내려주는 것 역시 아니다. 사회의 어두운 곳을 도려낸다고 변화가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으로 통합이 되지 않는다.
서로를 존엄과 합리성을 갖고 대하면서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를 합의해 나가야 하는데, 현재 여성, 외국인, 성소수자 등 존엄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공론장에서 이들이 발화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공교육에서의 인권 교육, 성차별에 대한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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