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선거의 4대 원칙은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다. 초·중등 교육을 받던 시절 한 번 이상 들어봄 직한 이야기다. 평등선거란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가 동등한 가치를 지닌 표를 행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표의 등가성이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게 쉽지 않다. 선거구의 크기에 따라 표의 가치가 달라지고, 당선자를 찍은 표와 낙선자를 찍은 표의 가치가 절대적으로 차이 나기 때문이다.
전자는 헌법재판소가 여러 번에 걸쳐서 선거구 유권자 수 차이를 좁히도록 판결함으로써 해결해왔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중앙선관위가 지역에서 낙선한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의 표도 국회의 구성에 동등한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개정된 선거법 내용은 중앙선관위가 내놓은 안으로부터 많이 후퇴했다. 각 정당의 이해관계가 작동하고, 그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 국회를 사실상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주권자의 권리 실현보다 자당의 이해관계를 앞세웠던 일부 정당의 행태는 조직의 논리에서는 정당했는지 모르지만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었고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언론에 있었다. 자당의 이익만을 앞세워 견강부회하는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였던 언론은 평등선거, 표의 등가성 등 민주주의 원칙을 몰랐을까? 선거법 개정의 절대적 이상형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언론들이 어떤 안이 헌법의 정신에 더 합치하는지를 판단 못할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도 언론에는 특정안이 어느 정당에 유불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찬성하고 반대한다는 관측 기사만 차고 넘쳤다. 정파성으로 똘똘 뭉친 언론들이야 애초 기대도 하지 않지만, 소위 정론을 내세우는 언론들도 선거법 개정의 본질인 표의 등가성이라는 가치를 강조하기보다 각 정당들의 주장을 전달하기 바빴음을 자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기사들이 시민들에게 정치혐오를 조장했다는 점을 인식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부족하나마 표의 등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이후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면 성과가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소위 ‘비례당’이라는 꼼수가 나왔다. 이는 표의 등가성을 실현하려는 개정 선거법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겠다는 반민주적 행태다. 비례당의 등장으로 개정 선거법의 가치 실현이 무산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언론들은 이런 반민주적 행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또다시 비례자유한국당의 등장으로 국회의원 수가 어떻게 변동할지 예측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사안의 본질과 무관한 행위자들의 발언, 행태만을 보도하기 바쁜 언론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걱정은 총선이다. 이제 4월에 총선이 있다.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주권자인 유권자가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는 중요한 시기다. 그런데 이전 선거에서 언론들은 후보자들이 내놓은 공약, 후보들의 선거 행태를 전달하기 바빴다. 소위 정당·후보자가 내놓은 의제를 따라가기 바빴다는 뜻이다. 선거란 주권자를 대리하겠다고 나선 정치인이 주권자가 바라는 바를 수용하고 약속하는 민주주의 축제다. 따라서 언론은 정치인들의 허언을 좇지 말고, 유권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쟁점화하여 후보자들이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도와야 한다. 소위 ‘유권자 의제’를 중심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선거법을 다루는 언론들의 행태를 보면서 총선보도에서 또다시 유권자의 존재는 실종될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컨텐츠 융합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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