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는 2019년 9월23일 ‘꼰대(kkondae)’를 오늘의 단어로 선정했습니다. 자신들은 언제나 옳다고 (그리고 너는 언제나 틀리다고) 믿는 나이 든 사람이라 설명합니다. 서양에서도 요즘 ‘베이비 부머’가 유사한 표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만, 권위주의 서열주의 특권의식과 같이 장유유서가 당연시되던 우리 사회에서 더욱 큰 반향이 나오고 있습니다. 말을 시작할 때 “나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며 개인의 지나간 경험을 일반화하고 상대의 생각을 멋대로 규정하는 데 신물이 난 젊은 세대가 비슷한 발음을 차용해 “Latte is horse(라떼는 말이야)”라고 패러디한 후 ‘라떼’는 나이 든 완고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들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유튜브 콘텐츠 <라떼월드>가 흥미롭습니다.
익선동 가보셨나요? 1930년대 만들어진 한옥단지가 보존되어 특색있는 모습으로 인스타그래머블하여 젊은 사람들에게 꼭 가볼 만한 곳으로 알려지게 된 곳인데 가까이 붙어있는 탑골공원과는 좀처럼 고객이 섞이지 않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소일 되는 안식처의 대명사 탑골공원을 <라떼월드>가 소개합니다. 5000원에 염색을 하고 4000원에 하루 종일 바둑을 둘 수 있는 엄청난 가성비의 명소들은 경로우대의 혜택을 받아 지하철이 무료로 연결된 인천과 충청도의 ‘라떼’들까지도 매일같이 찾는 천국임을 알려줍니다.
또 다른 편에서는 가수 송가인의 팬클럽 체험이 이루어집니다. 50대를 훌쩍 넘긴 분들이 핑크빛 의상을 아래위로 맞춰 입고 아이돌의 팬클럽과 똑같은 덕질을 합니다. 팬클럽 의상 통일, 굿즈 나눔과 응원 구호 및 댄스 연습 등 한때 자녀가 몰입하면 반대하고 혼냈던 행동을 그대로 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을 참기 어렵습니다. 음원사이트의 스트리밍 횟수가 순위에서 주요한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을 아시고는 월정액 서비스에 가입해서 24시간 내내 스트리밍을 들어주는 단결력으로 모든 분야에서 1위를 만들어내는 정성은 BTS의 아미가 부럽지 않습니다. 시간과 경제력이 한결 여유로워 밥차를 부르는 대규모의 물량 지원을 한다거나 굿즈로 돋보기안경이나 소주잔, 병따개와 같은 생활용품이 팔리는 모습은 놀이를 넘어 생활 밀착형으로 진화하는 팬덤의 문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재미의 관전 포인트는 몰랐던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 같이 머글들은 들어갈 수 없지만 호그와트로 향하는 마법사들에겐 당연하게 이용되는 장소들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한 그릇에 2000원인 국밥과 1000원에 반병을 나누어 파는 소주는 타임머신과 같은 우리네 삶의 박제입니다. 나누어진 사회 속에서 서로 섞이지 않는 삶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며 젊은 세대에게는 실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을 제공합니다. 레트로가 유행이 되는 21세기에 실존하는 레트로는 숨겨진 보물과 같습니다.
체험자로서의 <워크맨>과 달리 <라떼월드>의 진행자는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합니다. 그 세상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연령층에게 보여지는 장면들은 경험해 본 적 없는 삶의 다른 챕터와 같기에 <워크맨>의 빠른 템포보다 좀 더 찬찬히 보여집니다. 같은 점이란 <워크맨>에 출연하는 일반인들의 재기발랄함에 결코 지지 않는 ‘라떼’들의 천진함과 인간다움입니다. ‘꼰대’란 험한 이름으로 매도하기보다, ‘신비와 모험’ 같은 인생을 힘들게 헤쳐온 ‘라떼’들 모두 똑같은 사람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콘텐츠가 나눠진 세상을 좀 더 살갑게 이어주리라 기대합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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