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악명을 떨치길 바라겠지만, 우리 뉴질랜드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겠다.” 백인 우월주의자의 테러로 참혹한 희생을 치른 뉴질랜드의 총리가 의회에서 결연하게 선언한 말이다. 과연 우리는 그 백인 우월주의 테러분자가 누군지 모른다. 오직 참혹한 비극을 맞아 차분하게 그러나 영웅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뉴질랜드 국민을 기억할 뿐이다.
저신다 아던. 테러에 찢긴 나라를 추스르고 있다. 참사를 연대의 기회로 전환한 지도자다. 테러 발생 72시간 만에 내각에서 총기규제 정책을 만들고, 6일 만에 총독이 규제 명령에 서명할 수 있도록 준비한 정치인이다.
나는 히잡을 쓰고 애도하는 그의 사진을 보았다. 테러 희생자가 발생한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학생들에게 ‘슬퍼해도 좋다’고 위로하는 연설을 보았다. 동반자와 3개월 된 딸을 데리고 유엔 본회의에 참석한 모습도 보았다. 미국 토크쇼에 등장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농담을 주고받는 영상도 보았다.
저신다 아던은 친절하고, 부드럽고, 공감적이며, 젊다. 좋은 웃음을 갖고 있다. 말할 때 보면, 장식은 별로 없고 실질적인 쪽이다. 겸손한 가운데 할 말을 분명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요컨대 우리나라 정치인에게 없는 모습이다. 잠시 거만하고, 공격적이며, 제 말만 하는, 늙은 우리 정치인들을 떠올려 보자. 여기에서 늙었다 함은 실제 나이가 많다는 것보다 뭔가 구린 냄새를 풍기는 모습이란 뜻이다.
우리 정치인을 보면 내용은 없고 표현만 사납다. 내용이 부실하니 말이라도 세게 해야 한다고 믿는 걸까. 야당 원내대표의 연설도 그렇고, 정부 여당 쪽의 대응도 그렇다. 표현의 저열함으로 매번 새로운 최저점을 기록하려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정치인들이 처음부터 이랬을 리 없기에 도대체 무슨 사정으로 이렇게 됐는지 생각해 본다.
첫째, 우리 정치의 보상구조가 사나운 정치인을 길러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를 통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려는 신인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상대편을 괴롭히는 데 능한 신인을 등용한다. 좋은 법안을 내고 실제 입법에 성공한 정치인을 칭찬하는 게 아니라, 상대편 정당의 반발을 초래해서 폐기될 것이 뻔한 법안을 발의하고 회기 내내 우겨대는 정치인을 인정해 준다.
둘째, 우리 언론은 비열한 말을 하는 정치인을 좋아한다. 적어도 그런 정치인이 입을 열었을 때 무시하지 않는다. 그에게 악명조차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반대로 시민이 원하는 내용을 정책으로 전환하고, 반대당의 동의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을 무시한다. 아니 애써 찾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정치인이 있으리라 기대하지도 않는 눈치다.
셋째, 시민들이 나쁜 정치에 열광한다. 나는 이것이 앞서 말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정을 낳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본다. 우리는 경악하고, 충격 받고, 황당해하는 데 능하다. 사실 시민이 타락한 정치인을 혐오하고, 무능한 관료에 분노하는 일은 정상이다. 정당하게 분노하고 혐오를 표현하는 일은 오히려 시민적 덕성에 속한다. 문제는 정치인의 타락과 관료의 무능이 무슨 새로운 사건이라도 되는 듯이 열광하는 태도다. 지난 공화국과 다른 정권에서는 물론 이번에도 얼마나 많은 저열한 정치인들을 목격했는지 까맣게 잊었다는 듯이 말이다.
고요한 시간에 스스로 물어 보자. 우리 권력자 중에 친절하고 반듯한 이가 많은가, 무례하고 거만한 자가 많은가. 둘 종 어떤 쪽이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나. 흔하고 뻔한 쪽인가, 아니면 존재 자체가 놀랍고 고마운 쪽인가.
친절하고 반듯한 정치인을 무시하고, 무례하고 공격적인 정치인에 주목하는 시민적 태도를 ‘악덕에 대한 열광’이라 부르기로 하자. 우리 언론과 정치는 악덕에 대한 열광에 취해 있다. 이 열광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권력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어린 저신다 아던이 정치신인으로 등장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리라 생각하니 아찔하다. 아니 천신만고 끝에 이미 국회에 입성했을 수도 있는 젊은 저신다 아던이 좌절을 거듭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절망적이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 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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