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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특종의 연대

MBC <PD수첩>이 3월5일 방송한 ‘호텔 사모님의 마지막 메시지’를 보고 난 시청자들이 매우 놀랐다고 한다. 코리아나호텔 방용훈 사장 부인의 자살 사건 배경이 망자와 남편·자녀들 사이에 있었던 갈등 그리고 이들로부터 받은 폭행이나 실망감 때문이었을 거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취재 대상인 방용훈 사장의 협박성으로 보이는 발언과, 이들에게 적절한 사법처분이 내려지지 않은 것 같다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문제 제기의 중요성으로 보아 당연히 많은 언론들의 후속보도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위 주요 언론, 즉 전국적인 배포망을 갖는 신문이나 방송들 중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관련 기사를 다루지 않았다. 그냥 받아쓰기는 창피하니 심층 취재 준비 중일까, 아니면 여러 가지로 동종업계의 관련자 사안이라 보호 본능이 작용했을까?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전자라고 믿고 싶지만 언론계의 부적절한 동종 업계 보호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더 전형적인 사례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2019년 1월28일부터 보도한 ‘로비스트 박수환 문자’ 건이다. 주요 언론에 재직하는 고위 언론인의 채용 청탁, 금전 혜택, 이와 관련한 기사 거래, 네이버 연관검색어 삭제 시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불리한 기사 막기, 검찰 로비 의혹 등 하나하나가 다 이른바 ‘특종’감이다. 그렇지만 역시 주요 언론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루지 않았다. 관련 기자나 사주가 등장하는 조선, 동아, 한국경제 같은 언론들이야 그렇다 쳐도 왜 다른 주요 언론들까지 다루지 않았을까.

 

다른 언론들이 이런 중요 사건을 받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애초 특종을 낸 언론의 고유 특종이라서 따라잡기가 쉽지 않을 때. 자료도 부족해서 단순 받아쓰기 이상을 넘어갈 수 없다고 보니 꺼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안이 중요하면 시간을 써서라도 취재해서 밝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방용훈 사건이나 박수환 사건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주요 언론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래서 두 번째로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은 동종업계 보호 관행이다. 다른 회사의 사주나 고위 언론인이 관련된 사건은 가능한 한 축소하거나 다루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언론의 비판·감시·견제 기능을 포기하는 행태로, 최소한의 기사로 다루는 흉내라도 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았다. 혹 사건에 관련된 언론의 되받아치기를 무서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자사 언론사 사주 또는 고위 언론인들에게 마찬가지의 비리가 있을 것을 염려하는 방어본능. 박수환 문자 사건을 조금이나마 취급한 주요 언론들은 공영언론이거나 사주가 별도로 없는 독립언론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렇게 추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관련 기사를 내보낸 언론들도 박수환 문자 사건을 크게 다루지는 않았다. 여전히 자신들만의 특종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고 걱정이다.

 

한때 기존 언론의 호시절이 있었다. 수용자들이 기존 언론을 통하지 않고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른 소통의 경로도 있는 정도가 아니라 기존 언론을 떠나는 중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유튜브 세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털을 통해서조차도 기존 언론을 자주 접하지 않는 형국이다. 지금의 언론은 존재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언론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기사, 언론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깊이로 다른 플랫폼과의 차별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말 중요한 사건, 막강한 취재력이 아니면 밝힐 수 없는 사건들에서 언론의 존재 이유를 보여줄 노력을 하지 않고 생존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언론계의 치부를 스스로 도려내는 노력으로 남다른 신뢰를 확보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목 장난으로 클릭을 노리는 잔재주, 자극적 발언을 옮기는 행태로는 새로운 플랫폼과 경쟁할 수 없다. 이미 새로운 플랫폼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우월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언론사의 특종이라도 더 취재해서 언론의 깊이를 보여주는 노력, 그래서 언론의 존재 필요성을 각인시키려는 노력이 정말 필요하다. 이른바 ‘특종의 연대’가 필요하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