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1월4일 원내대책위를 열어 KBS가 언론의 자유를 악용하고 헌법을 파괴한다고 비판하며, 국민들이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고 수신료 강제 징수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BS의 ‘편향보도’를 지적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과 언론 길들이기가 극에 달하였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기시감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며 그 원인이 KBS, MBC 등 공영언론의 편파보도에 있다고 주장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시절은 기자, PD들에게는 한나라당의 전신들이 집권했던 이전 정부 어느 때보다 제작의 자율성이 보장됐다. 대표적으로 정부가 신지식인 1호로 내세웠던 황우석의 논문조작 보도나, 한·미 FTA 비판보도같이 정부의 핵심 정책을 비판했던 보도가 이를 입증한다.
그리고 이어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공영방송 언론인들은 ‘잃어버린 10년’ 구호의 의미를 뼈아프게 경험했다. 이명박 정권은 방통위, 감사원, 검찰, 교육부 등 공공기관을 동원하여 공영방송 사장을 쫓아냈다. 정부의 영향력 아래 선임된 경영진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요구하는 기자, PD를 해고 등 징계하고, 고유 업무와 무관한 업무에 배치함으로써 탄압했다. 기자, PD, 아나운서가 영업부서나 스케이트장에 배치됐다. 그 사이 편파보도가 극에 달했음은 물론이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수신료 인상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제는 맘에 안 드니 수신료 거부, 분리 고지 등을 주장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야당으로서 공영방송에 가할 압력 수단이 공영방송의 존재기반을 무너뜨리는 것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낮아졌던 국제적인 ‘언론자유 평가’ 순위는 오르고 있고, 공영언론의 신뢰도 순위도 회복 중이다. 자유한국당은 언론이 편파적이라는데 언론자유 순위가 올라가고 신뢰도가 회복되는 이 기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 시절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KBS 사장은 정부의 국정철학 기조를 적극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공영방송을 홍보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저열한 인식이다. 언론자유 순위가 내려가고 신뢰도가 떨어졌던 이유를 웅변하는 사례다.
공영방송은 당연히 집권 여당이나 정부를 대변해서도 안 되지만 동시에 야당을 대변할 수도 없다. 오직 시청자의 이익 즉 공익의 대변자일 뿐이다. 그리고 수신료는 이런 공익을 대변하는 공영방송이 특정 세력의 압력을 버텨낼 수 있는 안전판이다. 따라서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안전한 재원으로써 보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절하게 인상해야 한다.
단, 조건이 있다. 공영방송이 정부는 물론 특정 정치세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확보하고 오로지 공익만을 위해 노력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정권이 바뀐 후 현재의 공영방송 사장들은 공개적인 정책발표회나 시민들의 평가 참여를 통해 선출됐다. 그리고 그 사장들은 보도나 제작 내용에 관여치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정 정도 자율성을 획득한 것이다. 전제조건을 충족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제도적 보장은 아니다. 법 개정 등 제도화를 통해 공영방송 경영진을 독립적으로 선출하고, 또 그 경영진으로부터 기자, PD 등 현장 언론인의 자율성을 보장하여 외부적 압력을 막아내는 이중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오히려 방송법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다. 경영진을 선출하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권 전부를 국회가 갖게 하는 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공영방송 이사회는 국회의 축소판이 될 것이다.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할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지금 비판이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정부 등 특정세력으로부터 공영방송을 자유롭게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리고 수신료 거부를 외칠 게 아니라 오히려 자율성을 획득한 공영방송의 재원 안정성을 보장하는 수신료 인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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