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 이어 MBC도 조재범 전 코치와 관련된 성폭력 범죄 보도에서 피해자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미투 운동 관련 보도와 관련하여 작년에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실천요강에는 “피해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부르는 것은 피해자를 주목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2차 피해를 입힐 소지가 있으므로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워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등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 바 있다. 경향신문과 MBC는 이를 준수하기로 한 것이다. 두 매체 외에도 몇몇 언론들이 피해자보다 조재범 전 코치를 먼저 언급하고, 체육계의 구조적인 문제, 성적 지상주의의 문제 등 구조적 차원을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성폭력 범죄 보도 관행에서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환영할 만 하다. 

 

하지만 별 문제의식 없이 관행적 태도가 반복되기도 한다. 예컨대 노컷뉴스 SNS 계정은 체육계의 구조적 성폭력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성폭력 행위 묘사 중심으로 요약하여 제시해 논란이 되었다. 해당 요약은 성폭력 범죄 보도에서 늘 문제로 지적되어 왔기 때문에 보도 준칙에도 금지 항목으로 지정된 “가해자의 가해행위를 자세히 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에 해당한다. 해당 언론사는 뒤늦게 해당 SNS 메시지를 삭제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지난 8일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추가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한편 조 전 코치 측은 성폭행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6월 25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는 조 전 코치 모습. 연합뉴스

 

보도 관행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경우를 “제2의 피해자를 막는다”는 등의 표현에서도 볼 수 있다. 성폭력 범죄와 관련하여 피해자 중심으로 피해 사실을 나열하고 피해자가 진정한 피해자인지 평가하는 방식으로 보도해온 관행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에 문체부가 발표한 대책을 “제2의 피해자를 막는다”는 식으로 요약하여 표현한 것이다.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 않아야 하는 책무는 우리 모두가 지는 것임에도, 그간 성폭력 범죄와 관련해서는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제2 피해자 방지’라는 표현은 피해자가 더 나오면 안된다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범죄 행위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는 표현이라 사건의 의미를 구조화하고 인식하는 데 있어 피해자만 부각되는 성폭력 범죄 보도의 문제점이 축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양측의 말을 모두 보도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형식적 중립 보도의 틀을 고수하는 태도 역시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한 언론 기사는 조재범 전 코치가 무고를 검토한다는 것을 피해자의 말과 대치되는 형태로 제시했다. 실제 기사 제목과 달리 모바일 화면으로 볼 때 피해자의 주장과 가해자의 주장을 한 번에 보이도록 배치하느라 일어난 일이다. 성폭력 범죄가 대체로 권력 관계를 포함하여 일어난다는 점에서, 단순히 양측 말을 모두 전달하는 게 객관성이라고 믿는 보도 태도는 사실 확인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피해자의 말이 신뢰받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기 쉽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피해자를 가련하고 여린 사람으로 묘사하는 관행이다. 미투 운동을 “나도 당했다”로 인식하여 피해자화에 집중했던 언론의 문제가 여기서 다시 한번 드러나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가 취약한 청소년기에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폭로하면서 피해자는 “자신이 누군가의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나도 말한다”는 미투 운동은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인해 누군가의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에서 출발하며, 같은 문제를 경험한 사람들이 연대하여 해당 문제를 극복하고 구조를 개혁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신념을 담은 말이다. 가련한 피해자이자 어린 소녀로 피해자를 조명하는 것은 체육계의 폭력적인 위계 구조하에서도 용기를 내어 이를 폭로한 여성의 주체성과 연대에의 호소를 축소시킬 수 있다.

 

성폭력에 관련된 남성중심적 인식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고통을 경험하고 2차 피해에 시달리는 데 언론 역시 악영향을 끼쳐왔다. 성폭력 범죄가 인권 침해 행위이며 성차별적 문화 등 사회문화적 구조에서 비롯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좀 더 의식적으로 이제까지의 보도 관행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