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들과 뛰놀던 골목길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TV에서 만화를 틀어주는 저녁 6시가 되면 친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가야 했지요. 20인치도 채 안되는 작은 텔레비전 앞에서 형제자매와 어떤 만화를 볼 것인지를 두고 싸우던 기억은 지금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합니다. 그 시절 조간신문이 오면 가장 먼저 들춰보던 것은 TV 편성표였습니다.

 

한국의 1961년생은 공영방송사 KBS와 같은 해에 태어났습니다. 1970년생은 비디오 플레이어와, 1980년생은 컬러TV 방송과 동갑입니다. 1995년에는 케이블TV가, 2001년에는 디지털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하며 환경이 급변하였습니다. 2005년 아프리카TV, 2008년 한국어 유튜브, 2016년 넷플릭스가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안방극장이라 불리던, 눈으로 보는 세상을 향한 창이 60년 넘는 시간 동안 다채롭게 변화한 것입니다.

 

‘전파’에서 ‘케이블’을 거쳐 ‘비트’로 매질이 바뀌고, 바람 불고 비 오던 날에는 잘 보이지 않던 흐릿한 흑백 화면에서 4K가 넘는 해상도로 화질이 선명해졌습니다. 교육방송까지 합해도 4개에 머무르던 채널이 수백개로 다양해진 것도 큰 변화입니다만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누군가 주는 것을 볼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을 볼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방송의 정의는 “전파에 의한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하나”라고 하니, 다시 말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같은 콘텐츠를 전파를 통해 송신하는 행위라고 요약할 수 있겠네요. 이 행위에서 불특정 다수가 꼭 봐야 할, 혹은 좋아할 콘텐츠를 정의하고 기획하고 만들어 보내는 것은 시대의 요구를 이해해야 하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편성’이라 부르는 보여주는 콘텐츠의 배열은 방송사의 가장 막강한 권한이었습니다.

 

편성된 콘텐츠의 온에어는 집중해서 보아야 했습니다. 한번 지나간 장면을 다시 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온에어(on air)란 공기를 통해 뿌려지는 신호이기에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절대성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제는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각자 찾아보는 온디맨드(on demand)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온에어 시대에 공중으로 보내지던 전파가 온디맨드의 시대엔 0과 1이라는 비트를 통해 발신되고 있습니다. 적확한 표현을 쓴다면 발신이라기보다는 검색되어진다(retrieve) 하겠습니다.

 

온디맨드형 동영상 플랫폼은 시간 맞춰 TV 앞에 앉아야 하는 부담감을 없애줬습니다. ‘프라임 타임’에 맞춰서 가족들이 오손도손 TV 앞에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TV 디너’는 1인 가구가 급증함에 따라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각자가 유튜브를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보는 것은 ‘주어진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수동적 수용자’에서 ‘메시지를 선택하는 주체적 자아’로의 진일보와 같습니다.

 

콘텐츠를 수용하는 대상도 더 이상 불특정 다수가 아닙니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면서 저마다의 취향은 고스란히 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섭렵했던 흔적들은 다시 ‘되먹임’을 통해 동류의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집니다. 불과 몇천가구의 사람들이 그 시간에 어떤 콘텐츠를 보았다는 피플미터의 성긴 자료가 아니라, 어떤 콘텐츠를 어떤 경로를 통해 보게 되었는지, 어느 부분까지 보고 멈추거나 그만두었는지, 어떤 부분을 다시 보았는지 하는 상세한 내용까지 흔적이 남습니다. 이 흔적은 꼭 맞는 콘텐츠를 찾아주거나 추천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분석하는 자료로도 이용됩니다. 시청자 게시판에 남긴 소수의 의견 수준이 아니라 모든 관객 하나하나와 호흡하며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는 체계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집에서는 유튜브만 보다가 여행을 가서 TV를 처음으로 보게 된 아이의 이야기가 회자됩니다. TV를 보다 식사할 때가 되어 오라고 하니 아이가 “엄마, 이거 멈춰줘”라고 했다는 것이죠. 온디맨드 서비스만 이용해 본 아이는 마음대로 멈추거나 다시 볼 수 없는 온에어의 콘텐츠 구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TV 화면을 자꾸 손으로 누르는 행동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마치 스마트폰처럼 TV도 화면을 누르면 일시정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들은 주도권을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월·화 혹은 수·목의 정해진 시각에 수상기 앞에서, 기나긴 사전 광고를 참아가며 ‘본방사수’로 콘텐츠를 보기보다는, 월정액의 비용을 지불하고 원하는 시간에 자기만의 환경에서 ‘정주행’하고 싶어합니다. 콘텐츠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 역시 광고에서 서비스 유료화로 이동하는 것이 보입니다.

 

온에어 세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 온디맨드 세대가 다가옵니다. 그들에게 온에어라는, 멈추고 되돌릴 수 없는 화면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것과 같아서 늘 긴장하는 삶인, 나의 인생 같던 방송이 이제는 다시 보기를 넘어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임 속 캐릭터와 닮아가고 있습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