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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직접인용 제목과 신문의 ‘꼼수’

저널리즘 연구자들은 우리 언론의 기사 생산 관행 중 직접 인용과 관련된 문제점을 오랜 기간 비판해 왔다. 사회적 맥락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해외 언론과 비교했을 때 우리 언론에서는 제목에 직접 인용을 사용하는 빈도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 직접 인용은 객관주의를 형식적으로 보장하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엇을 직접 인용하는지 그 자체가 선택의 결과물이며, 직접 인용된 문구를 설명하는 서술어에 기자의 주관이 반영되는 경우도 많아 그 자체가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SNS가 광범위하게 사용됨에 따라 온라인 공간에 게시된 개인의 발언을 직접 인용 형식으로 기사화하는 것이 일종의 기사작성법이 되면서 이러한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2심 판결을 두고 그의 가족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언론이 무차별적으로 기사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수의 언론사는 페이스북에 게시된 내용을 자신의 관점에 따라 요약한 것이면서도 직접 인용 형식으로 제시했다. 이는 의견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수단이며, 언론사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우선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보도들에서 상반되는 양측 입장을 모두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라는 논의도 가능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직접 인용의 형태를 취하면서 교묘하게 사건의 해석틀을 만들려는 언론의 행태에 있다.

 

그렇다면 그 직접 인용의 내용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2심 판결이 보여준 중요한 진전 중 하나는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이란 잘못된 인식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성폭력 피해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믿음은 성폭력 피해자의 말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합리적 의심’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그래서 1심은 피해자의 말을 중심으로 피해자가 과연 얼마나 피해자다운가를 판단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피고인의 진술에 대해 판단하였고 ‘피해자다움’이란 인식은 허상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

 

페이스북에 게시되었던 내용은 이미 2심에서 배척된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의사 표현에 대해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에 뉴스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필요했다. 설령 해당 발언이 뉴스 가치가 있다고 해도 해당 발언 중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내용을 주로 직접 인용 형태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언론보도 행태는 2심 판결이 보여준 진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말 그대로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언론은 해당 게시글의 주장을 반론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야 한다는 요지로 작성된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의 공개 답변글을 기사화하면서 불륜만을 주제로 삼아 기사 제목으로 직접 인용했다. 이 글의 주장을 요약하는 데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제시한 것 자체가 그 언론의 해당 사건에 대한 해석틀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그 해석틀이 얼마나 문제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런 수준의 직접 인용이 객관성을 담보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는 뉴스를 작성하기 위한 취재와 분석의 기본적인 과정조차 거치지 않고 SNS에 화제가 되는 글을 복사해 옮기는 수준으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특정한 틀로 사건을 해석하도록 하려는 언론사의 시각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직접 인용의 형태를 취했다는 이유로 객관적인 체하고 이에 대한 저널리즘의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포털 서비스를 통해 뉴스를 읽는 뉴스 소비 행태에서 이런 식의 제목 달기가 갖는 효과를 알고 있는 언론사들이 포털 검색어에 기생하여 클릭을 유도하려는 상업적인 의도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언론의 2차 가해를 멈추라는 말은 해당 사안을 보도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태도로 저널리즘의 책임을 방기하지 않는 보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