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처음 갔을 때 시차로 잠 못 드는 밤의 적적함을 채워준 것은 지역 방송사에서 배정한 인포머셜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광고가 15초에서 1분이 채 안되는 시간이라면 이 광고는 10분도 넘게 한가지 제품에 대해 홈쇼핑처럼 떠들며 제품의 효능을 보여줍니다. 옆집 수다쟁이 아저씨 같은 모델이 파는 물건들은 제대로 박지 못한 못을 손쉽게 뽑아주는 기계이거나 떨어져나간 사기 주전자의 손잡이를 감쪽같이 붙여주는 접착제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평소엔 하등 필요함을 느끼기 어려운 물건의 사용법을 10분 넘게 보다 보면 저것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송사는 편성도 잘되지 않는 무료한 밤에 프로그램으로 채우기 어려운 시간을 통째로 광고에 맡겨버린 셈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인터넷에서 인포머셜과 같은 동영상 콘텐츠로 특이한 제품을 파는 업체들의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편안한 잠을 자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꿀잠을 자게 한다는 마약과 같은 베개를 파는 영상은 길거리에 늘어선 사람들이 베개 사이에 들어있는 달걀이 위에서 밟아도 깨지지 않음을 보고 놀라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광고이면서도 그 자체가 몇 분 동안 넋을 놓고 보게 만드는 엄연한 콘텐츠가 된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매체가 편성할 거리가 마땅치 않은 심야의 케이블TV가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처럼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볼 수 있는 채널로 이동했다는 것만 다릅니다. 마치 어릴 적 동네 공터에서 애들은 가라며 진귀한 볼거리와 차력을 선보이던 약장수의 마력과 같은 퍼포먼스가 언제나 마지막 제품 판매로 귀결되던 장면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광고와 콘텐츠의 동거는 오랜 시간 밀월같이 친근했습니다. 직접 제작 비용을 대기 위해 콘텐츠의 앞뒤에 광고가 붙는 것은 물론이고, 좀 더 적극적으로 콘텐츠 안의 구성요소로 광고가 들어가는 것을 PPL이라 부릅니다. 드라마 속 수험생은 홍삼 파우치를 마시며 안마 의자에서 공부의 피로를 풀고, 다른 드라마 속 사람들은 과일처럼 파프리카를 씹어 먹으며 대화를 나눕니다. 물론 파프리카의 효능을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말이죠. 개연성이 확보되지 않은 PPL에 대한 우리의 거북함은 공짜로 보는 TV 콘텐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까지 확대되며 나름 귀엽고도 음험한 공모의식을 제작자들과 공유합니다.

 

방송사마다 목표로 삼는 타깃 시청률은 주요 대상층이 잠재적 소비자로 변화할 것을 희망하며 연령과 지역 등을 감안해 분석됩니다. 콘텐츠를 본 시청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 때, 그 수와 대상이 확정되는 크기에 따라 제작의 비용을 대줄 스폰서들이 기대하는 매출이 비례한다는 연역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잠재 소비자의 크기를 어림짐작으로 가늠하고 그 위에 실제 소비로의 전환이 일어나길 희망하는 욕망은 화제가 된 콘텐츠의 광고비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것으로 보답됩니다. 마치 도미노처럼 우리는 앞 단계에서 얻어진 발판 위에 그 다음의 과실이 만들어지는 것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콘텐츠 자체가 광고로 채워지고, 표현의 발랄함과 기발함을 담은 광고가 콘텐츠로 자리 잡는 무한 순환의 회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잠재 고객이 아닌 확정 고객이 콘텐츠가 아닌 구매를 소비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계측됩니다. 결과는 영향력이 아닌 매출로, 복잡한 계산이 아닌 명료한 성과로 보상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콘텐츠 제작, 광고 판매 대행, 매체 기획, 시청률 측정과 같은 각기 다른 조직들이 협업하던 미디어산업의 오래된 협업 체계를 일거에 무너뜨립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광고주이던 산업의 플레이어가 시청자였던 소비자를 그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만날 수 있는 직거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죠.

 

본편 없이 광고만으로 채워진 콘텐츠를 수용하는 우리의 모습은 시청자와 소비자가 100% 같아진 21세기로 향하고 있습니다. 캠벨 수프를 화폭에 재현하여 예술의 경지로 올린 아티스트처럼 그 광고와 콘텐츠 사이 어딘가에 머무르게 될 우리의 다음 볼거리는 어떤 예술로 진화하게 될는지 사뭇 궁금합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