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디어 재현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한 아이스크림 광고는 여자 어린이 모델을 기용하면서 성적 소구 방식을 사용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실사화되면서 성차별, 인종차별 양상이 개선되거나 새로운 범주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알려지면서 논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영화 <알라딘>에서 서사의 중심이 여성으로 옮겨졌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고, <인어공주> 애니메이션 실사화 캐스팅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가 흑인 여성으로 알려지자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영화 '알라딘'의 한 장면
온라인상에서 오가는 이러한 논쟁들을 보면 흔히 문제의식을 느끼는 측에 대해 ‘불편해한다’는 표현을 써가며, 대부분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데 소수의 예민한 사람들만이 꼬투리를 잡는다는 식으로 의미화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어린이 모델 아이스크림 광고주가 해당 광고를 철회하면서 낸 사과문에서도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논쟁은 ‘소수의 불편’ 문제로 폄하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미디어의 재현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상에 대한 것이며, 재현의 다양성과 성평등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는가와 관련된 사회적 담론의 장을 여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이스크림 광고 이미지의 경우 우리가 오로지 노출 문제로만 성적 대상화 문제를 이해해온 경향 때문에, ‘입을 클로즈업한 이미지가 어떻게 아동의 성적 대상화라는 것이냐’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이상한 사람들이다’라고 하거나 심지어 ‘아동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질투해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등의 반응까지 나왔다.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2015년 영국 광고심의위원회(The 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는 성인 모델이 찍은 광고이지만 미성년자처럼 여겨지기 쉬운 여성이, 비록 노출이 심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맥락에서 성적 함의를 보이는 자세를 하고 있다면 문제적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또한 2014년 아메리칸 어패럴의 ‘Back to school’ 교복 웹 광고 이미지에 대해서도 역시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있으며 성차별적이고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와 같은 판단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기준이 노출이나 음란성 기준이 아니라 성차별성의 문제, 특히 아동·청소년이 대상인 경우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성적 함의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문제적인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미디어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하지 않는 성차별 관행이라는 것과 미성년자는 어떤 경우에도 성적 함의를 갖는 이미지나 문구로 표현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한국의 경우 최근 웹 광고 등에서 여아를 성인 여성처럼 보이게 하거나 성적 함의를 갖는 이미지로 재현하는 경향이 등장했지만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번 논란은 이러한 이미지 재현 양식이 왜 성차별적인지, 그리고 미성년자를 재현할 때 어떤 기준이 필요한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최근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재현 방식 변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재현 방식이 이상적이라거나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다. 재현 다양성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디즈니가 인종, 성별, 장애 등에 대한 차별적 재현 양상을 보여온 것에 대한 비판은 오래된 일이다. 비판의 역사를 생각하면 디즈니는 이제야 흉내라도 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다양한 인종을 등장시키고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최소한의 요건일 뿐이다. 특히 아시안의 묘사에서 여전히 고정관념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상황은 과도한 PC는커녕 출발선에서 백인남성중심성을 ‘약간’ 벗어난 작품들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틀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괜찮은데?’가 이러한 미디어 재현의 기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자연스럽게 여겨졌다면 왜 그런지가 질문이 되어야 할 일이다. 최근의 재현에 대한 논쟁을 평등한 재현이라는 이상을 합의하고 논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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