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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피해자에게 책임부터 따지는 ‘왜곡된 사회’

인스타그램 앱을 활용해 자신의 사진을 올리는 여성이 그 사진을 본 낯선 이로부터 성적 모욕을 포함한 댓글이나 개인 쪽지(DM)를 받았다.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어떤 말을 듣게 될까. 피해 여성은 “허락한 사람만 볼 수 있는 비공개 계정으로 운영하면 되잖아”와 같은 충고를 듣게 된다고 말해주었다. 일반인 여성의 인스타그램 주소가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나 트위터 게시글 등 공개된 공간에 링크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 게시글 댓글난에서 해당 여성의 사진을 보고 외모 품평을 하거나 성적 모욕을 하는 표현 역시 종종 발견된다. 이러한 댓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위 피해 여성과 비슷한 반응을 만나게 된다. 사진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기술이 충분하고, 그 기술을 사용할 줄 알 텐데 왜 사진이 떠돌아다니게 했냐는 내용의 충고 말이다.

 

일견 타당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비공개를 하는 것이 불쾌함을 피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온당한 반응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매체에 자신의 사진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다. 진정한 문제는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 성적 모욕을 가하거나, 아니면 그 사진을 공유하면서 초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의 얼굴은 지운 채 신체 일부만을 전시해 놓는 행위.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여성에게는 성적 대상화와 모욕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여성의 대상화를, 그리고 이로 인한 권리 침해 발생의 책임을 대상화하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돌리는 행위를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청사를 빠져나가고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그러나 우리는 피해자가 문제라는 말을 하거나 듣는 데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디지털 성폭력 범죄를 신고할 때, 피해자 본인이 촬영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경우 사건 담당자로부터 왜 그런 촬영을 했냐는 질문을 받고 위축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디지털 성폭력 범죄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질문이다. 온라인 게임을 하는 여성 이용자가 채팅이나 개인 쪽지를 통한 성희롱 피해를 호소하면 닉네임 등을 여성처럼 보이지 않게 하라고 충고를 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성폭력 범죄에 대한 가장 고전적이면서 문제적인 편견은 바로 피해자가 먼저,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았어야 한다면서 피해자 책임을 거론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 기술이 일상생활과 고도로 결합된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찍을 수 있고,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있고 다양한 SNS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모욕과 대상화 피해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면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이러한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바로 문제의 본원이다.

 

이러한 문제적 인식은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판결문과 그에 대한 언론 보도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이른바 ‘성적자기결정권’ 개념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피해자를 비난하기 위해 오용되어 왔다. 이번 재판 내용과, 이에 대한 보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성적자기결정권’은 피해자가 자기결정능력이 있는지를 따지라고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사회가 개인에게 보장해주어야 하는 권리이고, 이것이 침해되는 상황이 이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개념이다.

 

이 사건의 판결 내용에 대해 한 언론은 “재판부 ‘김지은씨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 강했다’ 안희정 왜 무죄 됐나 살펴보니”라는 제목으로 요약했다. 피해자가 침해당한 권리에 대한 재판에서 피해자가 능력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재판부의 답을 그대로 드러낸 이 제목은,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오용의 가장 전형적인 경우를 보여준다. 폭력의 순간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가 있었다는 것을 고발하려는 자리에서, 엉뚱하게도 피해자의 능력을 언급하고, 피해자가 그 능력을 활용해 어떻게 그 권리를 지키려고 노력했는지를 따지면서, 피해자가 얼마나 기존의 ‘피해자’ 신화에 부합하는가를 평가하기 위해 ‘성적자기결정권’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권리가 침해된 상황에 대해 호소하는 피해자에게, ‘능력’이 있다면서 피해자가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아야 했고, 이 때문에 피해자에게 문제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만드는 왜곡된 인식 구조의 핵심이다.

 

“비공개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세요” “유출될지 모르니까 사진과 영상을 찍지 마세요”는 답이 아니다. 그건 지금 문제 제기된 폭력에 대해 이 폭력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주장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성적자기결정권’이 있으니 이를 적절하게 행사하세요”는 답이 아니다. 그 권리는 사회와 타인에게 존중받아야 하는데 존중받지 못하고 개인이 이를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정확히 던져야 할 질문은 과연 그 권리가 존중받는 상황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