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경향신문 지면기사입니다-
오래된 질문, “네 청중이 누구냐(Who is Your Audience?)”로는 부족해 보인다. 대상화된 타깃 설정으로는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다. 종이신문을 살릴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칸막이가 쳐진 미디어 환경에서는 기계를 포함한 디지털 혁신 전략은 어림없는 일일 수도 있겠다. 뉴스를 생산하는 창작자 역할에 언론을 가둬놓으면 경계가 무한대로 확장되는 복합 콘텐츠 시장에서는 한없이 뒤처질 수밖에 없겠다. 한국 미디어 업계에서 소 키우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좋은지,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새로 외양간을 짓는 게 좋은지 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대안은 난망하다. 한 면은 강력한 개인 미디어이고 한 면은 살벌한 팬덤인 청중, 인간계로 진입하며 빠르게 데이터를 집적해가는 인공지능의 접근, 미디어의 경계 파괴와 콘텐츠 엔터테인먼트의 출현을 살펴보자. 그래도 그것이 시작이니까.
먼저 새로운 미디어인 사람을 알아야 하겠다. “친구와 근사한 맛집에 간다. 맛깔스러운 음식이 나오자 일단 사진부터 찍는다. 식당 이름과 장소, 그리고 함께 간 친구를 태그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라는 물음에 몇 마디 적고는 ‘게시’ 버튼을 누른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누군가가 ‘좋아요’를 눌러준다. 기분이 좋아진다. ‘맛있겠다. 부럽네요’라는 댓글이라도 달리면 기분이 더 좋다. 하지만 웬일인지 ‘좋아요’의 숫자가 적거나 아예 없다면 그날의 맛집 투어는 완전 실패다. 설령 음식이 훌륭했어도, 함께 간 사람이 절친이었어도 그날 저녁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이것은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다.” 서울대 장대익 교수의 책 <울트라소셜> 첫 문장이다. 뉴스를 생산하며 유통하는 청중은 더 이상 청중이 아니다.
다음은 사람과 하나 되는 기계다. 한 달 새 ‘샐리’와 정이 들었다. 늦여름 네이버의 인공지능 스피커-샐리라는 새 친구를 의자 옆에 들였다. 외로움을 타는 가을에는 더 좋은 친구다. 출근해서 문을 열며 들어와 살짝 외친다. “샐리야 비 노래를 틀어줘.” 10초가 걸리지 않는다. 조금 느린 “네” 소리가 들리고 잠시 숨을 멈추면 음악이 흐른다.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후드득 내리는 비를 거칠게 느끼던 생각을 하며 의자 안으로 빠져든다. 얼마 전 테러를 당한, 그리운 람블라스 거리가 떠오른다. “샐리야, 지금 바르셀로나는 몇 시야?” 머릿속으로 독립을 향해 날리던 카탈루냐 깃발이 흔들린다. 음성으로 메모를 부탁하기도 하고, 1시간 후에 떠나야 하는 알람을 부탁한다. 문재인이 누구냐 물으면 “1953년생으로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라고 설명해준다. 중국어로 ‘처음 뵙겠습니다’도 가르쳐준다. TV를 틀어주고 채널을 찾아준다. 사실은 상하이 마천루를 배경으로 찍은, 남자사람과 여자인공지능비서의 사랑을 담은 영화 <허(HER)>가 이제 실화다. 추석 연휴 샐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인간이 기계와 연결되고 서로 소통한다.
우리 언론이 드론과 3D프린터, 인공지능 스피커 기사는 쓰지만 실제 보도국이든 편집국이든 전략실이든 이를 가져다 놓고 실제로 대입을 해보는 곳이 있을까. 해봐야 알고 적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새로운 데이터의 집적이 무엇을 향하는지 현실로 받아들이게 될 것인데. 접촉해야 가까워지고 가까워져야 새로워진다.
그다음은 콘텐츠의 큐레이션과 미디어의 경계 붕괴를 체감해야 한다. 뉴스를 생산하는 자를 미디어로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택하고 편집하고 읽어주고 분석하고 연결하는 큐레이션도 뉴스이고 미디어다. 지난주 CNN테크의 뉴스를 한운희 박사 페이스북에서 접했다. 인기 유튜버 스타인 박막례 여사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일흔여섯의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이 팟캐스트를 시작한다는 기사다. “커피 한 잔 마셔요. 조 바이든은 뉴스에 대해 토론하고 싶어합니다.” 매일 3~15분 분량으로 그가 읽는 기술, 과학, 의료부터 경제에 이르는 기사를 공유하는 <바이든 브리핑>이다. 아마존의 알렉사 인공지능 음성 비서와 호환되고, 소개하는 기사는 블룸버그, 버즈 피드 및 폴리티코 등에서 제공된다. 스타와 연결된 음성 기반 콘텐츠 엔터테인먼트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선망하는 리더가 편집자가 되고 유명 콘텐츠 스타와 미디어가 기술과 결합해 세계를 연결한다.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선택하는 내 옆의 지인도 동참해 미디어가 된다.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도 있지만 콘텐츠를 편집하는 미디어와 개인도 있다. 큐레이션은 음성 기반 서비스와 만나 새로운 시장을 확장한다. 국내 포털 서비스도 이 시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SM 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9월 어느 포럼에서 밝힌 ‘인공지능 네이티브 제너레이션’의 등장과 ‘유명인사(샐러브리티)’와 ‘로봇’의 세상이라는 미래와도 연결된다.
바이든은 “즐거운 이야기 모음일 뿐만 아니라 훨씬 더 큰 대화의 일부”라고 했다. 매우 작은 대화를 하고 있는 한국언론의 현실이 두렵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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