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이 한창이다. 이 같은 대규모 스포츠 대회를 볼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레 선수들의 비범한 육체의 향연을 경탄해 마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몸은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오랜 훈련을 통해 다져진 것이다. 수영의 박태환처럼 어느 한 군데 허점을 찾기 어려운 매끄러운 몸이 있는가 하면 레슬링이나 유도 선수들의 일그러진 귀처럼 특수하게 반복된 훈련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 된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 많은 선수들이 0.001초라도 기록을 단축하고 단 1g이라도 더 들어올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떤 맥락에서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스포츠 미학이 우려할 만한 역사적 증오와 범죄로 추락하는 일도 있다. 정치 영화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뮤직박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성공한 중산층 변호사 앤의 아버지가 2차 대전 전범자로 고발되는데 그때부터 그녀는 혼란에 빠진다. 앤은 자신의 법률 지식을 총동원하여 아버지의 무고함을 밝히고자 하는데, 그렇게 할수록 아버지의 혐의는 더욱 뚜렷해진다. 결국 앤은 아버지가 나치 경찰의 간부로 양민 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 결정적 순간이 인상적이다. 아버지로부터 희생당한 사람들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이 잔혹한 도살자는 희생자들에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구호를 복창하게 하면서 그 잔혹한 학살을 즐기다시피 했다. 그 순간 앤은 치를 떤다. 그 구호는 아버지가 외손자 즉 자기 아들에게 승마를 가르칠 때마다 힘주어 외치던 구호였던 것이다.
사실 스포츠 혹은 육체에 대한 이 같은 신념은 히틀러 파시즘의 정치 구호이자 미학적 목표였다. 그들은 독일 인종의 우수성이 비범한 선수들의 강건한 육체로 나타나길 원하여 베를린 올림픽을 그 도구로 삼았고 강철 같은 조각이나 충용스러운 군사 행렬을 통해 ‘건강한 신체’를 거듭 찬양한 바 있다.
이런 파시즘 미학에 몰두한 일본의 군국주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 역시 헬스와 검도에 몰두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육체를 만들고자 하였고 그러한 절대미의 살아 있는 완성자로 ‘천황’을 떠올렸으며 급기야 천황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격렬한 논쟁의 한복판에서 할복 자살하였다. 게다가 그는 <인간실격>으로 유명한 동료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가 자기의 상처 입은 삶과 패전 이후의 일본 우경화에 대한 근원적인 절망감 때문에 자살했을 때 “그런 성격 결함이야 냉수마찰이나 기계체조로 고칠 수 있지 않은가”하고 조롱까지 한 적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익숙한 구호가 어떤 경직된 정세나 일그러진 사상과 결합되었을 때 조금도 동의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으로 추락하는가를 히틀러 파시즘과 미시마 유키오는 잘 보여준다. 당연히 우리가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선수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성취에 환호하며 그들의 좌절에 아쉬움을 갖는 것은 위와 같은 파시즘적 열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기는 해도 조금은 섬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번 대회에서 확실히 입증되었듯이 이제는 그 지독했던 금메달 지상주의나 이른바 ‘국위선양’ 일변도의 시선은 많이 줄었다. 그렇지만 선수들이 빚어내는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반응이나 그들의 성취에 대한 찬사는 여전히 틀에 박힌 모습이다. ‘인내, 투지, 승리’ 이러한 진부한 단어의 호들갑스러운 나열뿐이다.
왜 우리가 스포츠에 몰입하는지, 그들이 빚어내는 육체의 경합이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우리의 관습적이며 진부한 삶에 선수들의 빛나는 도약이 어떤 강렬한 잔영을 남기는지 성실히 헤아리는 시선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위선양 일변도에서는 조금 벗어났으나 스포츠 미학의 섬세한 결을 읽고 각각의 순간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의 미디어가 스포츠 선수들만큼이나 평소에도 그 미묘한 세계에 대해 깊이 ‘훈련’하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만일 그것이 결여된다면 그 게으른 시선은 언제든지 ‘국위선양’이나 ‘건강한 신체 운운’하는 옛 타령으로 돌아가기 쉽다. 선수들과 팬들은 직관적으로 이미 그 상태를 벗어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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