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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이슈가, 이슈가 되지 않는 세상(옴부즈만)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

 뭐 하나 갈피가 잡히는 게 없다. 이슈가 너무 많은데 아무것도 이슈가 되지 않는다. 지난 한 주만 해도 정치권은 대포폰과 청목회 수사로 야당대표가 농성에 들어가는 등 온통 시끄러웠고, 육해공군 모두에서 어이없는 사고들로 꽃같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내년의 300조 예산이 올라와 있고, 예산안 처리는 4대강사업을 어떻게 할지, 교육과 복지에 어느정도 투자할지, 부자감세를 철회할지, 나라빚을 늘릴지 등과 직접 맞닿아 있다. 4대강사업과 관련하여 정부와 경남도가 정면충돌 양상이고, 무상급식 예산과 관련하여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맞서 있다. 인권위 전문위원 61명이 줄사표를 냈고, G20의 사생아가 된 한미FTA 재협상도 논란이 되고 있다. 현대건설을 현대그룹이 인수하려는데, 정작 관심은 국민세금 3조가 들어간 것을 그대로 되돌려줄 것인가 여부가 아니라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의 집안싸움이 어떻게 되느냐가 되었다. 그 와중에 외환은행을 하나금융그룹이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론스타의 먹튀논란이 다시 일었다. 또 그 와중에 삼성은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던 이재용으로의 승계를 공언했다. 삼성은 한술 더 떠 말많고 탈많던 전략기획실을 부활했다.

 이 모든 일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하루종일 방송을 비롯한 언론을 장악해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수능이슈마저 덮어버린 사이에 이루어졌다. 지난주 G20에 이어 이번주 광저우 아시안게임으로 장막이 쳐진 사이 이 모든 이슈들은 홍수에 폐수 흘려보내듯 그렇게 땡처리되고 있는 중인 게다. 이제는 재벌권력도 정치권력이 만들어 놓은 언론환경을 이용해서 여론의 뭇매맞을 일들을 때맞춰 처리하고 있다. 또한 이슈와 사건사고가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이슈가 되지 않는 그런 무참한 시대가 되었다.

 국민이 아시안게임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일전 한중전 남북한전 등 얼마나 재미있는가. 이제 아시아스포츠의 수준도 세계수준에 근접해 있으니 볼만하기도 하다. 게다가 희망이라곤 없는 세상에서 스포츠스타들이 땀과 노력으로 정직하게 승리를 일궈내는 모습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이 좋아한다고 낮밤을 가리지 않고 방송과 언론을 도배해버리면 되겠는가. 아들이 컴퓨터게임 좋아한다고 몇날이고 놔두고 자기 볼일만 보는 부모가 제대로 된 부모인가.

 이명박정부가 4대강을 기어이 강행하는 이유에 대해서 항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지만 대통령 본인은 ‘나에게 남은 게 4대강밖에 더 있느냐’라며 자신의 심볼로 삼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하지만 이명박정부의 특징은 다름아닌 권력기관의 발호와 언론통제다. 대통령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니 권력기관을 통제할 수 없고, 독재정부하에서 강압통치술과 여론통제술을 연마한 선수들이 다시 득세하여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거기에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종편방송허가와 수신료를 가지고 언론을 통제하고, 한나라당의 인터넷 일만양병으로 온라인댓글 관리까지 더해진 것이리라. 하긴 이미 언론은 재벌기업의 광고에 종속되어서 재벌과 재벌이 편들고 있는 정부에 대해 기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으니 언론통제는 이미 식은 죽 먹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경향신문은 다루어져야 할 많은 이슈들을 빠짐없이 소화하느라 정말 애썼다. 특히 11월 19일자 헤드라인에 ‘노동할 의사만 있으면 직업 없더라도 노조설립 가능’하다는 서울행정법원 판결을 실은 것은 단연 돋보였다. 실업과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우리 청년들이 드디어 자기 목소리를 올곧게 낼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할 가능성이 열렸다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 자칫 사회면으로 묻혀버릴 수 있었는데 1면에 박은 혜안이 놀라웠다.

 

 하지만 같은 날 1면에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청와대의 대포폰 조종의혹에 대한 재수사여론이 비등하다는 기사에 “여당서도 ‘불법사찰 재수사’ 확산”이라는 제목을 달은 것은 부적절해보였다. 경향신문이 자주 박근혜의 실체없는 이미지관리용 복지타령을 띄워주고 여당 소장파들의 당론과 관계없는 액세서리성 폼잡는 말을 키워주는 것이, 야권에 대한 시니컬한 태도 때문인지, 여당내의 분열을 즐기는 것인지, 여당에서조차 문제가 있다고 하니 재고하라는 근거대기 차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박근혜나 한나라당이 정말 중도로 오는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라면 ‘진영의 논리’를 망각한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명박후보가 진보적이라는 망령이 떠돌아다니던 지난 대선의 전철을 또다시 밟아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