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일 미국의 중간선거를 코앞에 두고, 민주당 성적을 올리기 위해 버락 오바마가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선거 전 마지막 주말에, 고향이나 다름없는 시카고를 찾아 '예스, 위 캔'의 불기를 다시 지피려고 애썼습니다. 오바마는 주말 동안 시카고뿐만 아니라 펜실베이니아, 코네티컷, 일리노이, 오하이오 등 여러 곳을 정신없이 오가며 막판 캠페인에 주력했습니다.

오바마는 얼마 전에 제가 사는 곳에도 선거 지원을 위해 왔었습니다. 오바마를 원래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지지했으나 기대가 커서 실망하는 사람도 많지만, 정치가 개인으로서 그의 인기는 여전했습니다. 오바마의 연설 행사가 벌어지던 날, 캠퍼스 안에는(대학에서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 두세 시간 전부터 2만6천여 명(경찰 추산)이 줄을 늘어서서 검색대 통과를 기다렸습니다. 줄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길었습니다. 2km가 넘었는데, 이는 광화문에서 시청과 남대문을 거쳐 서울역에 이르는 정도의 거리입니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대통령 선거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미국 의회 중에서 하원 435석을 모두 새로 뽑고, 상원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33~34석도 새로 뽑습니다. 뿐만 아니라 50개 주 중 36개 주지사도 새로 선출되며, 각 주의 의원들과 여타 공직자 등도 선거 대상이 됩니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 소속 오바마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임기의 딱 절반을 보낸 지금, 집권 2기를 보낼 정치적 지형이 이번 선거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지형은 결코 오바마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미국 매체들은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크게 약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상하원 모두 야당이 다수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 오바마의 집권 2기는 적들에 둘러쌓인 채 전개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막판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잠깐. 여기서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자기 재선도 아니고, 의회 선거의 선거 운동을 하고 다니다니. 뭔가 문제인 것 같지 않습니까? 대통령은 의회 선거에 중립을 유지해야 하지 않습니까?

오바마가 한국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는 당장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를 받았을 겁니다. 기억하십니까? 2004년 3월에 한국 국회가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을 탄핵 소추한 이유는 '공직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노무현은 4월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몇 차례 했고, 야당은 이를 문제삼으며 탄핵 소추를 가결했습니다. 이를테면 2월에 노무현은 방송기자클럽 초청 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발언을 했는데, 이런 게 공직선거법의 공무원 선거 중립 의무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오바마가 전국을 돌면서 내놓는 발언에 비하면, 이는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는 기자회견에서 지지 발언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천 리 떨어진 민주당 유세장에 직접 찾아가서 민주당을 다시 지지해 주고 민주당 소속 후보를 뽑아 달라고 열성적으로 호소합니다. 그래도 티 파티어나 공화당 사람들이 오바마를 탄핵하자고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은 의회 선거인 중간선거에서 자기 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심지어 각 지역에서 열리는 캠페인에 직접 나가서 유세를 할 수도 있습니다. 선진국 한국은 엄격히 지키고 있는 공직자의 중립 의무를 후진국 미국은 몰라서일까요.

미국 총선에 현직 대통령의 참여가 허용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대통령은 국가 수반임과 동시에, 특정 정당에 소속된 정당인이기도 합니다.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자 민주당원입니다. 개인의 정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현대 민주 국가의 규정은 대통령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철저히 특정 당원의 위치에서 선거 운동에 참여해야 하며, 대통령으로서 갖는 권한을 선거에 활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특정 후보를 위해 백악관 예산을 한 푼이라도 써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민주당원 개인으로서 선거 운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바마가 전국을 돌며 갖는 선거 지원 집회는 모두 '대통령 오바마 연설회'가 아니라 '민주당 전국 위원회'의 정당 행사로 되어 있고, 오바마의 연설은 이 행사의 '일부'로 되어 있습니다. 전국을 오가는 데 공군 1호기(Air Force One) 비행기나 해병 1호기(Marine One) 헬기를 이용하는 정도는 인정됩니다.

물론 오바마가 대통령인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어떤 연설 행사에서도 '대통령 오바마'라고 소개되지 '민주당원 오바마'라고 소개되지는 않죠. 그러니까, 이런 제도는 '특정 정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대통령은 특정 정당인이다'라는, 반복서술적인 상식을 근거로 하여 용인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선거 운동을 하게 허용하면서 대통령으로서 갖는 권한이나 자원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미국 언론사들이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보도에서는 공정을 기하도록 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대통령의 선거 참여가 허용되는 두 번째 이유는,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 체제에서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자라는 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중간선거는 항상 대통령의 임기 딱 중간에 치러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특정 정당 소속 대통령에게 정권을 맡겨 2년 정도 해 보고, 그 평가를 임기가 절반 지났을 때 중간 선거에서 합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중간 평가를 할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국정 수행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를 끌어 내고 남은 절반의 임기를 자신의 뜻대로 끌고 가기 위해서라도 선거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국정 주도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것이라고 할까요. 중간선거는 곧 대통령의 선거이기도 한 것이죠. 그래서 이름도 '중간선거(midterm election)'입니다. 이 선거 자체를 대통령의 시각에서 본다는 뜻입니다. 대통령이 치르는 중간고사(midterm exam)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통령이 지킬 선을 지키면서 의회 선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자기 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선거 운동 참여가 보장되고 있더라도, 대통령 처지에서는 중간선거 참여가 전술적으로 득이 될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정치학자 M. J. C. Vile 같은 사람은 대통령이 중간선거 참여와 관련해 딜레마를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극 참여해서 자기 당을 지지하면, 의회 내 반대 당의 우호적 지지자를 잃을 수 있고, 패배했을 경우 큰 정치적 부담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고 무관심하거나 뜨뜻미지근하게 지지하다가는 자기 당으로부터 배은망덕이라는 윤리적 비판을 받게 됩니다.

어쨌든 오바마는 이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막판 분치기, 초치기까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는 대통령 등 공직자의 선거 참여를 금지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있으면 이를 사용화(私用化)하여 식솔들 배를 채우는 데 쓰지 못해 환장인 사람 천지인 세상에서는, 개인의 정치 활동 보장이라는 진주를 던져주기보다 제도적으로 발을 묶어 두는 게 차라리 낫다고 봅니다. 노무현 정도의 발언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보지만, 회색 지대가 있으면 다툼이 생길 여지가 있으니 아예 선을 그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몇 년 사이 급격히 망가지는 공직 세계의 윤리적 인프라를 보자니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지는군요.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