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공무원에게 방송사 현장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방송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언론노조를 비롯한 방송사 노조들은 이 개정안이 방통위에 ‘언론검찰’과 다름없는 권한을 주는 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문제 조항이 개정안에 포함된 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제1야당으로서 집권여당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10일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이 2009년 8월 대표 발의한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이 개정안에서 문제가 되는 대목은 제85조의 2 중 1항 7호와 4항이다.
4항은 “방송통신위원회는 금지사항의 위반 여부에 관한 사실관계의 조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소속 공무원으로 하여금 해당 사업장 등에 출입하여 조사를 하게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항에서 말하는 ‘금지사항’이란 “방송의 다양성·공정성·독립성 또는 시청자의 이익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1항 7호)를 뜻한다.
현장조사권이 발동되는 금지사항의 범위를 방통위가 대통령령으로 직접 규정할 수 있게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방송사 노조들은 이 개정안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송 유린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방송의 다양성·공정성·독립성”이라는 문구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될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다. 방통위가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의 보도 내용이 ‘공정성’을 저해했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할 경우, 공무원들이 언제든지 방송사에 들이닥칠 수 있다는 우려다.
문방위 임중호 전문위원도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일반 규제기관이 아닌 방통위가 사업장 등에 출입해 조사하는 경우 자칫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므로 방송사에 대한 사업장 출입 규정의 도입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방위는 이 조항을 남겨놓은 채 법률안을 통과시켰고, 심지어 민주당은 독소조항이 개정안에 포함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민주당 문방위 간사인 김재윤 의원은 “법률안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개정안에 위헌 요소가 있고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본다. 우윤근 법사위원장과 박영선 법사위 간사를 만나 이 같은 의견을 수렴해달라고 협조를 부탁했다”고 덧붙였다.
언론노조와 KBS·MBC·SBS 노조위원장들은 11일 국회 법사위를 방문해 개정안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규제기관인 방통위가 직원을 방송사에 파견, 조사하게 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며 “법령의 명확성이 결여되고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나므로 법사위의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MBC노조도 성명을 내고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방송사를 더욱 옥죄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이런 괴물 같은 개정안을 꺼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런 독소조항을 상임위에서 통과시켜준 야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언론사 노조들은 법사위가 문제 조항을 삭제하도록 촉구할 계획이다.
KBS새노조 엄경철 위원장은 “오는 15일이나 21일 법사위에 개정안이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필요하다면 기자회견이나 항의집회를 열고 문제를 공론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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