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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봇물 터진 북 3대 세습 논쟁

 경향신문 10월 1일자 ‘민주노동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라는 사설을 놓고 민주노동당 반박으로 촉발된 북한 세습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지난 8일 “(북한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노당의 판단”이라고 입장을 밝힌 이후 대중 지식인과 논객, 유명 블로거들의 지지와 비판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진보진영의 대표적 논객 진중권씨는 이정희 대표의 입장에 대해 “외교적 전략으로서 상대 체제를 존중하는 것과 진보전당의 이념적 지향으로서 특정 체제에 대한 견해를 갖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전혀 관계없는 두 사안을 뒤섞어놓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씨는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이정희 대표의 변명을 읽고’라는 글에서  “외교적 관계를 위해 체제 비판을 삼가자는 것은 오류”라며 “외교는 외교, 비판은 비판, 비판하면서 외교할 수 있다. 더구나 민노당은 외교부나 통일부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진씨는 이 대표의 ‘비판 강요는 국가보안법 법정의 논리’라는 주장에 대해 ““누구도 한 개인에게 자신의 양심을 털어놓으라 강요할 권리는 없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양심에 대해 침묵할 자유가 있다. 심지어 법정에서도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면서 “다만, 공당에게 그런 자유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당은 대중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와 이념적 성향을 분명하게 밝힐 의무가 있다. 왜? 표를 달라고 하니까. 그게 싫으면 정당 하지 말고 그냥 개인으로 남든지... 한 마디로 이 대표의 논리는 허접하다. 아마 본인도 자기 말을 안 믿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역사학자 김기협씨가 인터넷에 올린 칼럼에서 ‘싱가포르의 예를 보더라도 권력세습은 절대악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데 대해  “북한의 3대 세습이 부러워 해야 할 싱가포르식 선진적 정치문화라는 궤변이 등장했다. 민노당 이정희보다 차라리 솔직해서 좋다. 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진씨는 “싱가포르에서 우리가 부러워 하는 게 권력세습인가? 아니면 거리에 껌 좀 뱉었다고 태형을 가하는 건가? 자칭 역사학자라는 이가 새나라 유치원 수준의 논리를 폈다”고 밝혔다.

 진씨는 또 다른 인너넷 매체에 실린 글에 대해서도 “‘북한, 문제 있다. 하지만 지금 그 문제를 제기하면 안 된다. 언젠가 때가 올 거다.’ 뭐, 이런 논리”라고 소개한 후 “그런데 그 ‘때’가 언제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런 문제에 부닥치면 허탈해지는 것이 그나마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이들의 상태가 저 정도”라며 “그러니 우리는 누구랑 손발을 맞춰야 하나”라며 진보 지식인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설을 직접 집필한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은 민노당의 ‘경향신문 절독 선언’ 입장을 반박한 데 이어 이정희 대표 글에 대해 다시 반론을 내놓았다.

 이 위원은 9일 경향신문 홈페이지 ‘오피니언 X’에 올린 ‘이정희 대표에게’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민노당을 비판하고 지지하는 시민을 (보안법 기소) 검사에 비유한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며 “그런 법정에서는 오로지 민노당만이 진리이고, 민노당 외에는 모두 국가보안법이거나 검사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흑백 논리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민노당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았다. 사설도 말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적이 없다”며 “민노당이 말한 것에 대해 말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은 “3대 세습 비판이 김정일 정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측면 외에 민노당이 올바른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든지, 한국 진보세력의 대표로서 제역할을 다하고 있다든지, 시민들과 공감하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민노당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그만큼 정치적 역량이 증대되고, 남북관계에 관한 민노당의 발언권도 제고된다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경향신문 사설을 비판하며 민노당 입장을 지지하는 의견도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역사학자 김기협씨는 인터넷 시사언론 프레시안에 ‘경향신문과 이대근씨! 권력 세습은 절대악이 아니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싱가포르의 예를 들며 “권력 세습 자체가 그렇게 끔찍한 일은 아니다”고 했다.

 김씨는 “경향신문 사설은 민주노동당의 입장을 ‘북한을 무조건 감싸주려는 것’이며 ‘냉전 시대의 잔재’라고 몰아붙였다”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북한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어째서 북한을 감싸주는 것인가? 권력 세습이 무슨 천인공노할 절대악이라도 된단 말인가”라고 반박했다.

 이어 “권력 세습은 문명 발생 이래 대다수 인류가 역사의 대부분 기간을 통해 겪어 온 일이다. 근대 세계에서 이 제도가 사라진 것은 사회·경제·문화적 조건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며 “특정 사회의 조건에 따라서는 그 존속이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김씨는 “북한의 권력 세습은 현대 상황에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 행태라고 나도 생각하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바란다”며 “하지만 지금의 북한 사정으로는 적합한 권력 승계 방법일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자체가 절대악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것을 절대악처럼 내거는 것은 북한 문제를 모두 북한 자체의 책임으로 몰아붙이는 대결주의자들의 프로퍼갠더일 뿐”이라며 “경향신문이 이에 동조하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밝혔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경향>의 민노당 비판은 진보판 색깔론’이란 글로 비판했다.

 유씨는 “<경향>의 민주노동당 비판은 진보정당의 분열을 낳았던 소모적인 종북주의 논쟁을 재연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며 “인터넷과 트위터 상에서는 이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재연되었고, 논쟁의 구도는 진보정당이 분열될 때의 종북주의 논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향>은 진보정당의 앞길에 대해, 그리고 남북관계의 앞길에 대해 하나는 생각했지만, 둘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경향>에게는 북한의 권력세습을 당장 비판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만 있었지, 남북관계의 앞날을 헤아리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모습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말로 서울광장에서 ‘북한의 3대 세습 규탄 궐기대회’라도 열리고 거기에 진보정당들까지 손잡고 나서는 광경이 보고 싶었던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번 <경향>의 민주노동당 비판은 진보 안에서의 색깔 덧씌우기였다는 점에서 더욱 수치스러운 장면이었다”며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도, <경향>의 일련의 보도 이후 민주노동당이 그에 동조했다는 오해를 갖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유씨는 “이제라도 <경향신문>이 사실 왜곡의 기사 제목을 단데 대해 사과하고, 자신의 입장을 강압한데 대해서는 (사과는 안하더라도)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을 갖기를 주문한다”며 “명색이 진보 내부에서 색깔 덧씌우기가 활보하는 것을 두고 보는 일은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종목·손봉석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