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호…단국대 교수 언론영상학부
문화방송(MBC)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우 각별한 존재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PD수첩」 정도의 프로그램을 제외한다면 MBC는 제 역할을 수행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프로그램도 그렇고 조직운영에 있어서도 그렇다. 들리는 이야기는 대체로 어지러운 것들뿐이다. 이미 국정홍보방송이 된 KBS보다 못하다는 평까지 받는 뉴스.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주지 못하는 드라마. 그저 그런 오락 프로그램 등등.
오디션 프로그램인 <위대한 탄생>이 시청률 20%를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그뿐이다. 그 프로그램에서 노래가 어떤 존재였는지 이야기되는 것을 듣기는 어렵다. 지난해 장안의 화제였던 <슈퍼스타K 2>에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매체의 낮은 위상에도 불구하고 기록한 높은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대중가요 판에 던진 새로운 문화적 화두 때문이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위대한 탄생>과 관련해선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프로그램만 문제가 아니다. 조직운영 면에서도 MBC는 어지럽다. 여러 사례들이 있지만 그중 압권은 <신입사원>이라는 제목으로 아나운서를 공개 오디션으로 뽑자는 기가 막히는 아이디어다. MBC는 이를 몇 년 전부터 준비해왔다고 자랑스레 말하고 있다. ‘남의 일생을 건 취업 도전이 예능 소재감이냐. 그럼 MBC 사장부터 대국민 공개 오디션 보도록 하자’는 누리꾼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미스 아나운서 뽑기’ 정도가 될 이 프로그램은 곧 시작된다고 한다.
또 하나 어지러운 것은 엄기영씨 문제다. 엄씨는 MBC를 상징하는 인물로 사장에 임용되었다가 지난해 방문진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쫓겨난 사람이다. 그러자 MBC는 엄씨를 지난 1년여 동안 월 1000만원이 넘는 급여에 에쿠스 승용차까지 제공해주는 고문으로 모셨다고 한다. 쫓아낸 데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엄씨가 역대 어느 사장보다 빼어난 방송경영의 귀재라 그 재주를 듣고자 했는지는 모르지만, 전례 없는 이 일로 MBC나 당사자나 참 떳떳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편 엄씨는 정작 자신을 쫓아낸 권력 주변을 기웃거리면서 강원도지사 출마를 꾀한다 하니 본인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로 관계가 없는 듯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원칙과 기본을 망각한 채 흔들리고 있는 MBC의 면모를 드러내 주는 일이다. 프로그램과 조직운영에서 왜 잘하는 것이 없겠는가마는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MBC는 오랫동안 키워온 건강한 역량과 전통을 점점 상실해가는 집단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기본은 MBC의 리더십, 즉 김재철 사장과 MBC 경영진 그리고 주요 간부들이 가진 행동과 사고의 기준, 즉 철학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좀 거친 표현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이들의 행보는 ‘정권과 자본 앞으로’라고 요약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큰집 쪼인트’ 사태부터 시작해서, 노동조합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 전횡적인 조직개편과 인사, 프로그램에 대한 유형무형의 압박, 시청률로 재단해버리는 듯한 편성의 난맥상 등은 ‘정권과 자본 앞으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권과 자본 앞으로’란 환경과 복지와 평화와 민주 대신에 개발과 성장, 반공과 독재로 요약되는 수구기득권 집단에 충성하는 의식과 행태를 말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조직 내에 만연하면서 구성원들은 대체로 기존 체제의 논리에 순응하게 되고, 프로그램은 프로그램대로, 조직은 조직대로 활력을 잃게 된다. MBC의 상징으로서 「PD수첩」이 보여주는 빛나는 저널리즘은 이런 체제의 논리를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다.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비판적 상상력’이야말로 방송사 구성원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체 중 하나이다. 그것이 조직과 프로그램으로 스며들면서 자유롭게 발휘될 때 MBC는 창의적 문화집단으로 제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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