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 | 시사평론가
‘조두순 사건’ 때도 그랬고 ‘김수철 사건’ 때도 그랬다. 언론은 참 시시콜콜했다. 범행 방법은 물론 피해자가 입은 상처까지 미주알고주알 드러냈다. 공익을 위한다며 피의자의 사진을 ‘과감히’ 공개하기도 했다.
그랬던 언론이 몸을 사린다. ‘장자연 사건’을 마주하고선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재고 또 잰다. 비실명 보도 틀을 유지하고 인용보도와 중계보도로 일관한다. 도무지 발을 담그려 하지 않는다.
차이는 없다.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란 고색창연한 가치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오로지 ‘장사’ 측면에서만 봐도 전자와 후자에 차이는 없다. 모두 언론이 목숨 걸다시피하는 ‘클릭 수 올리기’에 ‘딱’인 사건이다.
성과 엽기, 그리고 드라마적 요소를 두루 갖춘 ‘맞춤형 소재’다. 그런데도 언론의 태도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전자에선 날더니 후자에선 긴다.
차이가 하나 있긴 하다. ‘조두순 사건’과 ‘김수철 사건’의 경우 수사기관이 ‘공증’한 사건인 반면 ‘장자연 사건’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재논란의 계기가 된 ‘장자연 편지’의 진위조차 가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언론의 이중성을 설명하는 건 무리다. 수사기관의 ‘공증’이라는 것이 법원 확정판결을 받지 않은 ‘피의사실’일 뿐이라는 형식논리는 논외로 하더라도 언론의 이중성을 지적할 근거는 더 있다.
언론이 ‘조두순 사건’과 ‘김수철 사건’에 득달같이 달려든 시점은 피의자가 체포되기 전부터였다. 수사기관의 ‘공증’ 이전에 독자 취재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그 ‘과감성’을 유독 ‘장자연 사건’에서는 발휘하지 않는다. ‘장자연 편지’의 진위와는 별개로 회유와 강압, ‘스폰’과 ‘성상납’이 어지럽게 오고간 의혹이 이미 제기된 상태인데도 독자 취재를 하려 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다. 취재 여건만 놓고 보면 더 낫다. ‘조두순 사건’과 ‘김수철 사건’에선 오리무중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했지만 ‘장자연 사건’엔 디딤돌이 있다. 2년 전의 수사자료다.
수많은 고소인과 참고인이 등장하는 이 수사자료를 따라 자체 검증을 해도 ‘맨땅에 헤딩’할 일이 없는데도 이마저 시도하지 않는다. 어떤 언론은 뒷짐진 채 ‘면피용’ 기사만 게재하고, 어떤 언론은 경쟁 언론을 겨냥한 듯 슬쩍 건드렸다 슬쩍 빠진다.
어설픈 규정은 피하자. 언론의 이런 이중성에 공포감이 드리워 있다고 몰아치지는 말자. 조두순과 김수철은 별 볼 일 없는 흉악범인 반면 장자연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사회적 강자여서 언론이 자진 비굴 모드를 장착했다고 예단하지는 말자.
언론이 실명을 박아 비판하고 폭로한 사람들 중에 그들보다 더 높고 더 힘 센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게 엄연한 사실이기에 이렇게 몰아가는 건 무리다.
오히려 귀찮아했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이름 석자만 뻥끗해도 즉각 소송에 들어가겠다는 어떤 이의 엄포에 고개 돌려버렸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려 진 빼는 게 귀찮고 싫어서 ‘기본’만 하자고 처음부터 작정했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경찰이 재수사에 나서 실체를 규명한다면 한 번 들이밀어 보겠지만 그마저 믿을 수 없기에 알아서 방벽을 쳤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그렇게 안이하고 태만하게 대했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이렇게 보면 참담해진다. 언론의 ‘귀차니즘’ 때문에 망자의 한과 국민의 알권리가 저당 잡혔다는 얘기가 되니까 이처럼 참담한 일은 없다. 그 ‘귀차니즘’이 결국 언론의 존재 이유를 부정했다는 얘기가 되니까 이처럼 참담한 일은 없다.
궁금하다. 언론은 포털에서 전개되는 서명운동을 어떻게 볼까?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서 장자연씨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수사를 촉구하는 네티즌 서명운동이 진행되는 걸 어떤 심정으로 바라볼까? 과연 이들을 알권리에 목말라하는 국민으로 볼까, 아니면 오지랖 넓은 호사가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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