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KBS·MBC 등 공영방송 경영진이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했던 기자·PD들을 내쫓고 편파·왜곡·불공정 방송을 일삼은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그들을 비호하는 권력은 사라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반성도 하지 않은 채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공영방송의 개혁과 경영진 사퇴를 요구하는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난 12일 KBS 양대노조와 사내 10개 직능협회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대영 사장은 즉각 퇴진해야 한다”는 요구가 88%에 달했다고 밝혔다. KBS 역대 사장 가운데 최악의 불신임률이다. 또 이인호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KBS 이사회가 해체돼야 한다는 응답은 90%나 됐다.
고 사장과 이 이사장 체제에서 KBS는 권력의 방송장악에 부역하고, ‘정권 호위 방송’으로 전락해 시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지난해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전화를 걸어 KBS 세월호 리포트를 삭제할 것을 요구한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또 지난 8일에는 2011년 6월 KBS 기자가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몰래 녹음해 당시 한나라당에 발언록을 전달했다는 ‘뉴스 타파’의 충격적인 보도도 있었다.
최승호 뉴스타파 PD 겸 앵커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정동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 PD는 “방송들이 정권 성향과 무관하게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안이 조속히 입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헌 기자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던 MBC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김장겸 사장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MBC 보도부문 기수별 성명도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성명에서 “김장겸 사장과 부역자들이 MBC에 자행했던 불법, 부당, 편법, 농단의 실체를 낱낱이 밝힐 것이다. 하나하나 확인하고 기록해 후세에 남길 것”이라고 했다. 김 사장 체제의 MBC는 특집 다큐멘터리 ‘탄핵’ 편을 불방시키고, 담당 PD를 비제작부서로 내쫓았다. 또 지난해 말부터 준비해왔던 <MBC스페셜> ‘6월항쟁 30주년’ 편의 제작 중단을 지시하고 담당 PD를 징계했다.
YTN에선 ‘박근혜 낙하산’으로 거론됐던 조준희 사장이 자진사퇴하자 해직된 지 8년6개월 된 노종면 기자가 지난 11일 사장 공모에 나서겠다고 했다. 노 기자가 출마의 변 형식을 빌려 밝힌 “YTN의 개혁, 진정한 통합과 도약을 위한 도전”이란 글은 방송개혁의 시급성을 역설적으로 웅변해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방송농단’을 자행한 공영방송 경영진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 그게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기자·PD들을 내쫓은 폭거를 속죄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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