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
원회(방심위)가 방송의 제작 자율성을 훼손하는 독단적 결정과 편향적 심의를 일삼는다는 지적을 받은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제 열린 방심위 전체회의에서 KBS의 광복 70주년 특집 역사 다큐멘터리 <뿌리 깊은 미래>에 대해 중징계인
‘경고’ 제재를 의결한 것은 방심위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방심위는 이번 심의에서 <뿌리 깊은 미래>가 한국전쟁을 언급하면서 구체적으로 ‘남침’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국가 정체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객관성’과 ‘공정성’ 항목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의도적인 게 아니다”라는
연출자의 해명은 묵살됐다. 뉴라이트 출신인 이인호 KBS 이사장이 “북한이 할 만한 내레이션이 나왔다”는 등 제작편성에 개입하는
발언을 할 때부터 충분히 예상됐던 결과다. 한 보수 언론은 ‘KBS, 좌편향 다큐 내보내며 수신료 인상 요구할 수 있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어 좌편향 논란을 부추겼다.
이인호 KBS 이사장이 지난해 여의도 KBS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국전쟁에 대해 말할 때 “북한의 남침”이라는 표현이 없으면 무조건 문제가 있다는 건가. 게다가 이 다큐멘터리는 일반 국민들이
광복 이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어떻게 일어섰는지 보여주려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이런 취지와 기획의도를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생략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체 9명의 심의위원 가운데 여당 추천위원(5명)들이 엉뚱하게 ‘국가 정체성’
등을 앞세워 중징계를 관철시킨 것이야말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치 심의’라는 방증이다.
또한 방심위는 2011년 친일 행적의 백선엽씨를 전쟁 영웅으로만 그린 KBS 다큐멘터리 <전쟁과 군인>에 대해서는
‘문제없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중잣대’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회의에서 한 위원은 “제작진이 80년대 유행한 잘못된
사관에 입각해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80년대 냉전시대 인식과 레드콤플렉스에 갇혀 있는 건 방심위다.
방심위가 이번 심의에서 여고생끼리의 키스 장면을 내보낸 종편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 대해 중징계인
‘경고’를 의결한 것도 표현의 자유 침해와 동성애에 대한 ‘차별적 심의’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는커녕 언론자유를 훼손하는 방심위라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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