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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시론]만담 수준의 종편 시사프로그램

만담이 돌아왔다. 코미디나 개그 프로그램에서 사라진 장르인 줄 알았던 만담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아닌 시사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곁에 돌아왔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시사토크 프로그램과 만담의 만남을 성사시킨 곳은 다름 아닌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들이다.

이명박 정부의 특혜로 탄생한 종편은 우리나라 방송환경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는데, 그 중에서도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역할을 바꾸는 변화를 몰고 왔다. 종편이 생겨나기 전, 시청자들은 ‘시사프로그램’ 하면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 또는 토론 프로그램 등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종편이 출범하면서 진행자와 몇 명의 패널들이 출연해 신변잡기나 노변정담류의 일명 ‘노가리를 푸는’ 변종 시사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이다. 제작비가 적게 들고 정통 시사프로그램에 비해 주제 설정이나 패널 섭외가 쉬운 만담 수준의 시사토크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종편의 행태는 그동안 유지되어 온 우리나라 정통 시사프로그램의 역할과 가치를 왜곡하고 망가뜨리는 짓으로 우리나라 방송 프로그램의 평균 하향화를 불러올 위험성을 안고 있다.

많아도 너무 많은 만담 수준의 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방송 내용이 노골적으로 편향적이고 저급하다는 것이다. 적은 제작비로 방송시간을 때우기 위해 만들어진 만담 수준의 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들은 정제되지 않은 저질, 막말을 쏟아내고, 편향성을 가진 패널들을 출연시켜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파괴하고 있다.

실제로 ‘한겨레21’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공동으로 지난 1월 한 달간 종편 4곳의 시사프로그램 16개에 출연한 시사평론가 190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는 출연자를 출연시키고, 근거도 없고 객관성이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방송에 내보내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예로 TV조선의 대표적인 시사토크 프로그램인 <장성민의 시사탱크>는 한 역술인을 방송에 출연시켜 2015년 시사를 전망하는 내용을 방송했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풍자 형태로나 할 수 있는 이러한 행위를 시사프로그램에서 버젓이 하는 것이 과연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매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다. 방송내용은 더 가관이다. 이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 출연한 역술인은 2015년 시사전망을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의 부모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궁합에서도 천상궁합”이라고 발언했다. 뒷골목 시장통에서나 나눌 법한 내용을 시사프로그램에서 버젓이 방송하고 있는 이러한 종편의 행태를 언제까지 묵인하고 있어야 하는지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깝다.

종편 방송들의 유대균 체포 보도 관련 뉴스 (출처 : 경향DB)


더 황당한 것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원회의 한 위원이 이 역술인의 발언에 대해 “국민들에게 즐거운 소리를 했다”는 평가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가진 위원이 위원회에 앉아 심의하고 있는 한 종편의 일탈이 멈출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 든다.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시사문제를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분석해서 방송하는 역할을 하는 시사프로그램이 객관성과 공정성은 고려하지 않고, 오락적으로 희화화하는 태도는 기존의 정통 저널리즘을 만담 수준의 저질 저널리즘으로 망가뜨리는 행위이다.

따라서 종편은 객관성과 공정성이 없는 발언을 일삼는 진행자나 패널들을 즉각 방송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시사토크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최소한 시사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사회자와 패널들로 출연자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방송 내용의 심의를 맡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종편이 방송에 적합한 소재와 언어를 사용하고 방송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종편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 심의를 통해 사회적 흉기에 가까운 막말과 인신공격을 중단시켜야 할 것이다.


최진봉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