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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사설]여당 의원도 ‘사망선고’ 내린 KBS 사장

세월호 참사 등의 보도에서 청와대의 ‘방송장악’을 앞장서서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 KBS 길환영 사장은 공영방송 최고책임자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권위와 자격도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공영방송을 청와대의 부속기관쯤으로 전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데다 기자들은 물론 보도국 간부, 노조 등 거의 모든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철저한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 국회의원마저 길 사장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고 한다.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은 26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에서 “(길 사장은) 직원과 기자들에게서 이미 불신임을 받았다”며 “현(길환영) 사장 체제의 KBS는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청와대 개입설도 적극 파악해 진실을 가리려는 노력을 해야 하며 안되면 그만둔다는 각오로 눈치 보지 말고 소신 있게 하라”며 미방위에 출석한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을 질책했다고 한다. 언론인 출신인 이 의원은 지난 18대 대선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국민행복캠프 대변인과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등을 지냈다. 여러모로 길 사장을 ‘엄호’할 법한 이 의원조차 그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는 것은 길 사장 체제의 KBS로는 공영방송의 가치를 지킬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월호 정국’을 책임있게 이끌고 가야 할 여당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KBS조합 길환영 사장 퇴진 요구 (출처 경향DB)


때마침 KBS 이사들이 길 사장 해임제청안을 오늘 정기이사회에서 매듭짓는다고 한다. 26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야당추천 이사 4명이 해임제청안을 상정했고, 사흘 동안의 논의를 거쳐 오늘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사진, 특히 여당추천 6명의 이사들은 길 사장을 해임하는 것이 지금의 KBS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첫 단추임을 깊이 인식하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미 기자·PD 중심의 2노조뿐만 아니라 기술직 중심의 1노조까지 이사회가 길 사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즉각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결의한 바 있다. 길 사장은 이사회에 보낸 서면의견에서 “월드컵·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방송이 정상화돼야 한다”며 자신을 유임해달라고 요청했다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라도 길 사장은 해임해야 마땅하다. 내부구성원 절대다수가 신뢰하지 않는 사장, 여당 의원에게서조차 사실상의 퇴출선고를 받은 사장 아래서 월드컵과 지방선거와 관련한 보도제작인들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는가.


박래용 정치에디터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