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시대의 흐름을 바꾸었다. 세월호 희생자는 시대정신을 변화시키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들은 온몸으로 이 시대의 허상을 고발하고 산화했다. 정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함, 언론의 무치, 기성세대의 탐욕을 드러냈다. 우리들로 하여금 미안하게 하고, 허탈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각성하게 했다. 그리하여 49재를 목전에 두고, 우리는 근본적인 변화를 결단하고 있다. 이들의 희생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2014년 4월16일을 계기로 이제 우리의 시대정신은 리셋으로 바뀌었다. 정부를 리셋하고 언론을 리셋하고, 우리의 가치관을 리셋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리셋의 첫 단추는 정부개조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고심 끝에 ‘김기춘 비서실장 유임, 안대희 국무총리 지명’을 발표했다. 미흡하지만, 다음 과제는 언론의 혁신이다. 그런데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음이 강해지면 양이 쇠하나, 음이 극강해질 때 바로 양이 성하기 시작하는 법이다. 사실 KBS는 그동안 우리의 신뢰를 꾸준히 잃어 왔다. 그래서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편파·왜곡 보도, 오보와 막말이 이어졌지만 다른 언론들과 같은 ‘기레기’임을 재확인하고 허탈해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KBS의 편파·왜곡 보도가 정권의 영향을 받은 길환영 사장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로 드러나면서 KBS의 리셋이 가장 중요하고도 긴급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길환영 사장 퇴진 요구 (출처 :경향DB)
‘길환영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KBS의 정상화를 위한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의 지난 23일 파업 찬반투표는 역대 최고인 94.3%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한국방송 노동조합(1조합)도 파업 찬반투표를 27일까지 실시하는데, 찬성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면 이번 파업은 전 세계 언론사상 최초로 노조와 회사 간부가 일제히 사장 퇴진을 외치는 ‘노사파업’이 될 것이며, 뉴스뿐 아니라 다수의 프로그램이 결방되는 파국이 오게 된다.
이렇게 심각하고 긴급한 현안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첫째, 길환영 사장을 임명제청한 KBS 이사회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최양수 이사(연세대 교수), 한진만 이사(강원대 교수)는 여권이 추천한 이사이기 이전에 언론학계의 신망을 받고 있는 학자이다. 정파성에 갇혀 있을 분들이 아니다. 이길영 이사장, 이병혜 이사(명지대 교수), 양성수 이사, 임정규 이사도 KBS 출신으로 KBS를 사랑하고 그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길 사장을 감싸고 가는 것은, 지방선거는 물론 국가의 장래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길 사장 퇴임 후 해방구 같은 혼란이 우려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일단 부사장 대행체제로 가면서 중심을 찾아나가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KBS 구성원들의 시대정신과 지성을 믿어야 한다.
둘째, 차제에 KBS를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으로 리셋해야 한다. KBS를 정권이 아니라 국민의 방송으로, BBC(영국), ARD(독일)와 같이 자랑스러운 공영방송으로 탄생시켜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심도 있게 논의할 공론의 장을 마련한 뒤, 그 결과를 받아들여 실천할 것”이라며 “공영방송 이사회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균형 있게 반영하고, 공영방송 사장 선출 역시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하겠다”고 언명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 내각 및 비서진 개편은 근본적인 태생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평가에 따라 미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 그중에서도 KBS의 리셋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의명분도 있다. 박 대통령은 공약을 실천하는 신뢰의 상징이 된다. KBS 이사들은, 고개만 돌리면 피안이다. 공영방송다운 공영방송으로 KBS를 탄생시킨다면, 이는 박근혜 정부 최대의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희생을 뜻깊게 만드는 기념비가 될 것이다.
김민기 |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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