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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사설]청와대는 ‘방송장악’ 실상 밝히고 책임져야

세월호 유족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퇴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폭로하고 있는 청와대의 방송통제·간섭의 실상은 하나같이 충격적이다. 해경의 사기를 위해 비판을 자제하라는 것에서부터 대통령 관련 뉴스는 러닝타임 20분 내에 소화할 것, 대통령 순방 때는 꼭지를 늘릴 것, 국정원 수사는 순서를 내릴 것 등 공영방송이라는 KBS를 마치 자신들의 머슴처럼 부리는 내용들이다. 게다가 자신들이 선호하는 기자를 청와대 출입기자로 발령을 내라는 등의 인사 개입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청와대의 방송장악 지침을 앞장서서 수행해 왔다는 길환영 사장이 어제 “KBS의 독립성이 사장에 의해 침해당한 것처럼 악의적으로 왜곡됐다”며 사퇴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그가 자리에 눌러앉아 있다고 해도 이미 사장으로서의 권위와 자격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본다. 일선기자들은 물론이고 보도국 간부, 노조 등 KBS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그를 사장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그의 사장직 유지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보다는 청와대의 어떤 인물들이 공영방송을 이처럼 무참하게 망가뜨렸는지 철저히 진상을 밝혀낸 뒤 해임 등의 책임을 묻는 것이 더욱 긴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로비에서 열린 KBS 기자협회 총회 및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지윤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방송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 불가능하며, 그 문제는 국민 앞에 약속드릴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그동안 숱하게 방송장악을 해왔으며, 국민 앞에 약속은 했지만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박 대통령은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이랄 수 있는 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일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대국민담화에서 “세월호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사과했다. 공영방송 KBS를 정권을 보위하는 하부기관쯤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촉발된 이번 KBS 사태의 최종 책임자도 당연히 박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KBS를 포함한 공영방송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지켜보겠다.